월풀 세탁기와 건조기는 집에 처음부터 딸려 있던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지어진 지 삼십 년이 넘은 아파트와 연식이 얼추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그 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에도 이미 너무 구닥다리였으므로, 당장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고, 조만간 그리 되리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추측이 무색하게, 십 일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 이것들과 정이 들고 말았다. 언젠가 고장이 나 새것으로 교체해야 할 날이 온다면 무척 슬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건조기로 옮기며 그 슬픔을 느꼈다. 조만간 이 오래된 쇠붙이 친구들과도 작별이다. 헤어짐의 이유는 예상과 달리, 이들이 고장 나서가 아니라 내가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엊그제 변기를 닦는 일회용 청소 스펀지를 아마존에서 주문할 때는 또 어땠냐면, 매번 구입하던 제품의 주문버튼을 클릭하려다, 아차차 했다. 이제 한 달 하고도 2주 뒤면 이곳을 떠난다. 매주 토요일,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 변기를 청소하므로, 앞으로 고작해야 일곱 개의 청소 스펀지가 필요할 뿐이다. 서른두 개짜리 대용량 대신, 열개짜리 작은 박스를 주문했다.
비어버린 물비누병도 가득 채우지 않고, 절반만 채웠다. 이 정도면 한 달 남짓 사용하기에 적당한 양일테다. 아침 공복에 먹는 올리브오일을 사러 가서는 1리터짜리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고 대신 옆의 500ml짜리 작은 병을 샀다.
요즘은 항상 이런 식이다. 뭔가를 사려고 할 때마다 앞으로 여기에 머물 기간을 계산하고, 짐을 쌀 박스의 공간을 생각하고, 그리하여 가장 작은 단위의 물건을 사던가, 그도 아니면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사지 않고 그대로 돌아 나온다.
개 데리고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가서는, 이제 이 한가롭고 너른 잔디밭과도 안녕이구나―했고, 단골 정육점에서 튀긴 만두를 사면서는(한국인이 사장인 이 정육점에서는 고기 말고도, 만두라든가 순대라든가 닭껍질튀김 같은, 육류의 부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이제 한국식과 중국식이 오묘하게 섞인 이 두툼한 튀김만두를 더 이상 먹지 못하겠구나― 했다.
그리고 때때로 한국을 떠나 처음 이 도시에 발을 딛었을 때를 떠올렸다.
바다만큼이나 넓은 프레이저 강(江)을 가로지르는 포트만 브릿지와 거대한 침엽수가 밀림같이 빽빽한 숲길과 산란기가 되면 숲 속 작은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던 연어 떼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 풍경들이 죄다 이국적이고 낯설었다. 지금은 골목에 곰이 출몰하고, 깊은 밤 코요테가 울부짖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또 뭐가 있을까? 검붉은 야생 블랙베리가 흐드러지게 달리는 여름과 붉은 단풍으로 뒤덮이는 가을의 아름다운 정경.
그리고 겨울비를 빼놓을 수 없다.
방수점퍼 어깨 위로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줄기. 젖은 낙엽냄새. 찰박찰박 물웅덩이를 건너는 개들의 발자국 소리. 그런 것들.
어느 순간, 이국땅에서의 지난날들이 와르르 밀려들어와, 나는 눈물을 찔끔 훔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언젠가 다시 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대로 떠나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이곳이 싫어서도 아니고, 딱히 오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서도, 어쩐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나중에 여행으로라도 오지 않을까? 어떤 것도 단정 지어서는 안 돼―와 같은 말들로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곳을 다시 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예지에 가까운 확신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건 그저 자연스레 떠오른 직감이므로 설득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내 직감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나중에 틀리더라도, 그리하여 이곳에 다시 돌아온대도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는 그 문제에 깊이 빠지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여 요즘의 나는, 익숙한 것들, 당연한 것들, 그래서 그냥 지나쳐버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흘려보냈던 것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조각이 될 이곳을 카메라로 찍듯이 마음에 담고 있다.
그런 식으로, 매일 작별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