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마트에서 집어든 블루베리는 씨알이 어찌나 굵은지 포도알만 했다. 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어서,블루베리인지 포도인지 박스에 붙은 라벨을 한번 더 확인했을 정도다.
이곳의 블루베리는 철이 시작될 무렵에는 흔히 아는 정도의 크기지만, 여름이 깊어가고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점점 커진다. 가격도 차츰 낮아져서 한창일 때는 1킬로에 10달러도 하지 않는다.
8월의 막바지, 볕은 여전히 타들어갈 듯 뜨겁고 늦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블루베리는 과육을 키워낼 시간이 길었던 만큼, 최대치로 커졌다. 맛도 정말 좋다. 신맛이 하나도 없고 농익은 달콤함만 가득하다.
나는 과일에 그다지 열성적인 편이 아니지만, 이맘때 나오는 블루베리라면 매일 먹을 수 있다. 캐나다 서부에 살면서 하나 좋은 점은, 인근 로컬 농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신선하고 맛있는 블루베리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년부터 이런 블루베리를 더 이상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한국에도 블루베리는 있지만, 이렇게 씨알이 굵지도, 매일 한 바가지씩 퍼 먹어도 부담 없을 만큼 값이 저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름은 유난히, 강박적으로 블루베리를 먹고 있다.
또 아쉬운 음식으로는 사모사를 들 수 있다. 난데없이 왜 인도 음식인 사모사가 튀어나오냐면, 인도에 직접 가지 않고도, 제대로 된 인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캐나다 살이의 장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인구의 절반은 인도인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인도계 이주민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인도 식재료와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인도인 직장 동료가 알려준 사모사 가게는 식당은 아니고 포장만 가능한 곳으로, 인도식 만두인 사모사와 야채튀김인 파코라를 즉석에서 튀겨 팔았다.
가게 주인과 점원은 물론이고, 손님 역시 거의 인도인이지만, 개중에는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알음알음 찾아온 나 같은 동양인이나 백인 손님도 있었다.
나는 이전까지는 인도 음식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는데, 이곳에서 만든 사모사를 맛본 뒤로는 단골이 되었다. 사모사는 속에 넣는 종류가 다양하여, 으깬 감자를 넣은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닭고기나 양고기를 넣은 것도 있다. 나는 감자를 넣은 사모사에 달콤하고 끈적한 소스인 타마린드 처트니를 곁들여 먹는 것을 즐겼다. 캐나다를 떠나면 이 별미도 더는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노란 바탕에 붉게 물든 투톤 컬러의 오카나간 산 레이니어 체리, 사각사각하고 달콤한 칠리왁 옥수수, 커드 치즈 위에 뜨끈한 그레이비를 잔뜩 올린 푸틴, 마트에서 파는 Dare사의 메이플 쿠키.
내가 좋아했던, 캐나다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이런 먹거리와도 안녕이다.
이런 식으로 요즘의 나는, 뭘 먹을 때마다 지금 아니면 먹을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자꾸만 과식을 했다.
말하자면 나는, 이곳에서 누렸던 것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될 상황만을 떠올렸다. 자꾸 뭔가를 놓치는 기분이 들었고, 영원히 잃어버린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마음이 헛헛하고 아쉽고 쓸쓸했다. 이런 사고 패턴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나를 굉장히 불행하게 만들었다.
곧 떠날 것과 지나가 버릴 것에만 집착을 하고, 정작 앞으로 한국에서 누릴 즐거움은 잘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도,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친다.
예를 들면 말랑말랑하고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전주복숭아라든가, 쫀득쫀득한 대학 찰옥수수라든가, 해풍 맞고 자란 달큼한 섬초라든가, 캐나다에서는 너무 비싸 사 먹을 수 없는 생굴이라든가, 당면만 들어 있는 분식집 순대라든가, 이성당에서 파는 생도나스라든가, 여태껏 한 번도 안 먹어봤지만 꼭 먹어볼 성심당 망고시루라든가... 굵직한 가래떡으로 만든 부산 떡볶이... 부산 물떡... 진주집 콩국수... 명동 칼국수... 남대문 갈치조림...(몇 줄 더 쓰고 싶지만 참는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캐나다 음식은 캐나다에서 충분히 즐기면 되고, 한국에서는 한국의 음식을 먹으며 만족하면 되는 것을 정반대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때그때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즐기자고, 지나간 과거에 미련 두지 말고, 현재의 순간에서 기쁨을 찾자고.
포도알만큼이나 큰 블루베리를 입에 넣으며, 십일 년 동안 이렇게 맛있는 블루베리를 먹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딱 그렇게만 생각하기로 했고, 더 이상 그 핑계로 과식은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