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함께 돌아가는 개와 그렇지 못하는 개

by 모모루

마음에 걸리는 건, 내 늙은 개다.

한국으로의 귀국은 녀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썩 반가운 일은 아닐 테다.

개는 경기도 성남의 어느 집 마당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반에 캐나다로 건너와 11년을 살았다. 아마 이곳을 자신의 평생 집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개는, 한국보다 캐나다에서 훨씬 행복했다. 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숲, 그리고 목줄을 풀고 뛰어놀 수 있는 도그파크가 어디에나 있고, 개를 싫어하는 사람을 거의 야만인 취급하는 범국가적(?) 분위기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운 산책은 누릴 수 없다. 서울 본가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그곳은 주변에 변변한 공원 하나 없는 복잡한 중심가에 있는지라 차가 다니는 좁은 골목길과 아스팔트 위를 걸어 다녀야 한다. 개는 그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을 기억할지, 기억한대도 반가워할지 알 수 없다.

녀석에게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또한, 세상을 떠난 외눈박이 개가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외눈박이는 몇 년 전 산책 중에, 수풀 속에 뛰어들어 갔다가, 그 안에 숨어있던 코요테에게 물려 죽었다.

외눈박이는 태어날 때부터 눈 한쪽이 없었는데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인지 겁도 없었다.

외눈박이와 늙은 개는 한배에서 난 형제였지만 성격이 정 반대였다. 늙은 개는 나처럼 내성적이고 소심한 반면, 외눈박이는 용감무쌍하고 거침이 없었다.

낯선 상황에도 딱히 주눅 들지 않았고, 한쪽밖에 없는 눈은 늘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나는 외눈박이의 모험가적 기질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외눈박이 같은 성격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외눈박이는 그 대범함 때문에, 야생 코요테에게 물려 죽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개를 화장한 뒤, 나는 뼛가루를 차마 뿌리지 못하고, 작은 단지에 넣어 여태껏 보관하고 있었다. 가끔 그것을 볼 때마다, 자유롭고 거침없던 외눈박이 입장에서는, 죽어서도 어딘가 갇혀 있기보단 바람과 흙으로 흩어지기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언젠가는 녀석이 사랑하던 숲 속에 묻어주거나, 넓은 강으로 흐르는 시냇물에 뿌려줘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까닭은, 그렇게나마 개를 옆에 두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약간의 미련이 남아 한국으로 개의 유골을 가져갈 수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검역을 포함하여 절차는 까다로웠고, 승인 여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제는 그만 외눈박이를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나와 늙은 개가 더 이상 같은 땅에 살지 않고 아주 떠나버린다는 사실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 아가, 그동안 내 욕심과 감정만 내세워 너를 작은 항아리 안에 가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이제라도 자유롭게 놓아주자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낯선 땅에 너를 두고 떠나는 게 너를 외롭게 하거나 버려진 듯 느끼게 하는 건 아닌지.

다만 육신이 없는 자유로운 너는, 국경도, 거리도 상관없이 언제라도 나와 네 형제를 만나러 올 수 있지 않을까?




외눈박이가 든 작은 단지를 끌어안고 이런 말들을 건네면서도, 어쩌면 이 또한 순전히 나를 위한 자기 위안적 해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1화작별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