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만 있는 사회는 어떤 곳일까. 그런 호기심으로 이직 약 3년 만에 다시 이직의 길을 택했다. 이미 한 번 겪어본 일이었기에 두 번째는 수월했다. 이력서용 사진을 새로 찍고 이번 회사에서 올린 정량적 성과를 강조한 자소서를 작성했다.
총 4곳의 면접을 보았고 최종적으로 도쿄 유라쿠초(有楽町)에 위치한 모바일 액세서리 유통사에 합격했다. 포지션은 영업부 이커머스(EC)팀. 직위(카타가끼 肩書き)는 없다. 평사원으로 시작해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로컬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ECチームに配属となりました、金と申します。
(EC치무니 하이조쿠토 나리마시타, 키무또 모우시마스)
입사 첫날, 아침 조례시간에 모두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다. EC팀에 배속된 김입니다. 사내 몇 외국인은 있었지만 영업부 내에서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그동안은 드문 드문 말하던 일본어를 업무시간 8시간 내내 풀가동 시켜야 했다. 질문도 일본어, 대답도 일본어.
팀원들 대부분 20대 중, 후반. 이미 30대를 넘긴 나에게는 어린 동생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곳은 사회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성에 상(さん)을 붙여서 말하기 때문에 나이차에서 오는 이질감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20대 선배도 A상, 50대 임원도 B상.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회사에 도착하고 나면 개인 사물함에 가방과 ‘핸드폰’을 모두 사물함에 넣어두어야 했다는 것이다. 일본 회사에서는 업무 중 개인 핸드폰 사용이 통제된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사전에 봉쇄했다. 이전에 일본 친구들과 연락하던 때가 생각났다. 아침 출근길에 나누던 대화는 저녁이 되어서야 답변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입사 후 두어 달은 회사 시스템과 직원들 얼굴 익히느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코로나 시국이어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눈과 목소리 만으로 파악해야 했다. 재택근무도 진행되고 있었기에 다른 팀 멤버는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했다. EC팀은 중고 신입인 나의 교육을 위해 감사하게도 매일 같이 출근해 주었다.
그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일반적인 의사소통은 JLPT N2에 나올법한 단어나 문형이면 대부분 커버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어려운 단어’로 말하는 일본어에 대한 집착을 최대한 버렸다. 말이 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전문성은 그다음 문제!
보통 입사 3개월 후 사내평가를 거쳐 정사원 채용여부를 결정한다. 다행히 팀 멤버 3명이 나와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영업부 임원에게 전달했고 2개월 만에 정사원으로 승급되었다. 일본어도 완벽하지 못한 외국인을 편견이나 차별 없이 받아들여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성과로 팀에 보답하리라.
유통이 중심인 회사에서 EC팀에서 나오는 매출은 1할 수준이었다. 지난 직장에서 익힌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배당받은 쇼핑몰 상품들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키워드를 조사해 상품명을 개선했고 이미지를 보완해 나갔다. 고객 리뷰에도 꾸준히 답변을 달았다. 이따금 문장이 막힐 때면 다른 멤버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실적은 점점 우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된 덕택도 있었지만 팀 멤버들과 함께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매일이 행복했다. 반기에 한 번씩 설정되는 KPI(핵심성과지표)도 120%로 초과달성하게 되면서 사내에서도 팀에 대한 기대치도 덩달아 올라갔다.
이 흐름대로 간다면 임원급으로 까지 올라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40명 정도의 작은 회사로 입사 2년 만에 임원까지 올라간 케이스도 있었다. 나라고 못할 건 없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일이 더욱 재밌어졌다. 업무 시간 외에도 자발적으로 경쟁사 조사도 하고 트렌드를 익히기 위한 공부도 이어나갔다. 다음 꿈은 영주권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