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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나의 첫 사요나라

by 형민 Dec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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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비자를 받았던 순간부터 일본을 떠나는 날을 그려본 적이 없다. 일본에서 계속해서 10년을 거주하면 비로소 평생 살 수 있는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진다. 최종 목표는 어느 순간 영주권이 되었고 이번 회사에서 신청할 계획을 세웠다.


4명의 팀 멤버, 그리고 다른 팀 멤버들과 협업을 해가며 매일매일 변동되는 실적을 숨죽여 지켜봤다. 수량 한정으로 수입한 5G 중저가 스마트폰을 아마존재팬에서 단시간 내 전량 소진시키면서 사내 평가도 높아졌다. 운이 좋게도 6개월 만에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팀 리더(팀장)로 승진했다.


팀 리더가 되니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일본인들보다 밀리는 건 일본어뿐일지도 몰라. 평사원일 때는 없었던 관리 업무가 추가되기는 했지만 부담 없었다. 멤버들과 힘을 합쳐서 더 위로 올라가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어 실력 보강이 필요했다. 정확한 지시,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경제 관련 책과 기사들을 읽었다. 거기에 나오는 표현들을 익혀나갔다. 주말에는 넷플릭스를 이용해 드라마 일본어를 공부할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공부해 나갔다. 재택근무가 이어지고 있었기에 사내 메신저를 통화 화상회의 (일본어로 텔레비/비디오 통화)를 이어가며 공부 후 실전이 이어졌다.


일본어가 외국어라고 느껴지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여전히 일부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마땅한 표현이 없을 때 애를 먹기는 했지만 한국어로 말할 때도 종종 있는 일이다. 머릿속에서 사고도 일본어로 먼저 이루어졌다. 여자친구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역으로 한국어 스위치로 전환해야 했다.


“이 말이 한국어로 뭐였지?”


일본에 처음 갔을 때 한국말 사이에 일본어를 집어넣어 말하는 선배들(주로 장기간 거주했다)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내심 언어 파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10대 후반에 일본에 와서 지금은 50대가 넘은 한 지인은 사실상 한국어를 다 잊었을 정도다.


일본어에 대한 벽이 허물어지니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회의를 하고 때로는 논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팀 매출 확대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일본어는 삶 그 자체였다.


기새등등히 매출목표를 연이어 달성했다. 회사에서도 욕심이 났는지 급기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목표가 하달되었다. 150을 할 수 있는 팀에게 300 이상의 실적을 요청(강제)했다. 그러기 위한 인력확충이나 예산 할당은 없었다. 하물며 단 돈 100엔을 쓰더라도 품의서(링기쇼:稟議書)를 올려야 했다.


팀장 > 그룹리더 > 임원 > 부사장 > 사장으로 올라가는 품의 절차. 거기에 더해 왜 이 금액을 써야 하는지 사유서(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한 푼이라도 헛되게 낭비하지 않겠다는 시스템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품의 한번 처리되는데 보통 2주가 걸렸고 매번 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온라인은 속도전인데…


여기에 일본 이커머스 시장 성장 둔화와 개인적 역량 한계에도 부딪혔다. 돌아온 분기 평가에서는 목표 달성 실패로 상여가 삭감되기까지 했다. 팀원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위기일수록 초심으로 돌이가자.


처음 일본행 목표를 잡은 것은 일본의 선진화된 사회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하지만 역동적인 대한민국은 어느 사이엔가 선진국 대열로 올라섰고 문화 콘텐츠, 특히 이커머스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이미 비디오 커머스가 활성화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BTS, 블랙핑크 등 K-pop 그룹들이 전 세계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것을 TV와 인터넷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J-Pop은 일본에 오기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꾸준히 가는 것이 일본의 강인함이기도 하지만 도리여 약점이기도 하다.


“그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자! 더 큰 세계로 나가려면 한국에서 체력을 길러야 해. “


1년 후면 손꼽아 기다리던 일본 영주권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 한 번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본에서의 일생(一生)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했다. 성장해서 사업가가 되어 돌아오기로 다짐과 함께. 그렇게 약 3년여에 걸친 (그토록 바랬던) 순도 90%의 일본회사생활도 마무리 지었다.


10년 전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시작한 일본행. 하루하루가 꿈같았다가도 현실의 벽 앞에서 고군분투했던 지난날들. 그 사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 함께 꿈을 키워 나갔고 단단한 일본어 그릇도 완성했다. 다음은 나의 초심이었던 한국으로 돌아가 체력을 길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일임이 분명해졌다.


2013.09.05(목) - 2023.10.01(일)


짧고도 길었던 일본, 그리고 일본어와 함께한 시즌 1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곧 시즌 2가 시작되리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0년전 도착했던 나리타 공항에서 다시금 작별을 고한다.


さよなら、またね!(사요나라, 마타네)

안녕,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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