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는 세븐틴과 캐럿들의 총괄리더 에스쿱스가 게임 마비노기에서 실제로 팬들을 만나 해준 말을 캡처한 화면입니다.
"혹여나 뭐 그렇게 (불안감이) 온다면,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일단 해.
그리고 그걸 이겨 내면, 아, 나 원래 이정도는 할 줄 아는구나. 하라고 하면 막상 하네? 다행이다.“
- "세븐틴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힙합 팀 인터뷰에서 멤버 민규가 한 말
논문 앞장에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일종의 땡스 투를 적는 경우가 있다. 내 논문에는 그런 걸 쓰지 않았지만, 만약에 써야 했다면 아마도 그 땡스 투의 맨 마지막 줄은 세븐틴 민규에게 할애했을 것이다.
민규야, 너의 '하면 해' 정신 덕에 내가 이 미친 짓에 종지부를 찍었어,
라고.
나는 후회를 잘 안 하는 성격이다. 물론 과거의 나의 모든 선택이 다 옳았을 리 없다. 성격이 급하고 기분대로 내키는대로 결정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때가 부지기수고 실수도 많았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늘 재미있게 지내온 편이며, '그때 왜 그랬을까' 싶다가도 '그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굉장히 관대하고 인자하기 그지없다. 뒤를 잘 안돌아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남들이 어떻게 보거나 말거나 스스로의 삶이 꽤 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내가 굉장히 후회한 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대학원 입학이다. 나는 대학원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덜컥 대학원 입학원서를 냈다. 회사 일은 하면 할수록 연차도 쌓이고 연봉도 올랐지만, 무언가 거기서 배운 것이 내가 원하는 지식과 경험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강하게 휩싸여 있던 때였다. 그 병을 치료하려면 지금 당장 나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대학원에 가야했고, 나의 이 불타는 마음으로는 직장과 대학원 병행? 그쯤이야 할 것 같았다.
이 생각이 스스로를 고통으로 쳐넣는 세기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입학을 한지 반년이 지나서다.
학부 전공과는 전혀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니 일단 수업을 알아듣기가 버거웠다. 무엇보다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한다는 건, 가느다랗기 그지 없는 내 체력과 정신머리를 마치 볼드모트가 호크룩스를 나누듯 여러 갈래로 나누어서 그 각자를 최대한으로 활성시켜 실수가 나지 않게하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으로서는 그저 불가능에 가까운 묘기를 부려야 하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장거리 비행기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속으로 "쯧쯧, 뭐가 그리 급할꼬" 혀를 차며 안쓰러이 여기곤 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바로 내가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는 기내에서 소논문을 급조하고 있었다.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그와중에 이직까지했다. 새 회사에 적응하면서 시험 준비를 해야 했고, 불행히도 이직 초기에 야근이 많았던지라 10시고 11시고 집으로 돌아오면 씻고 다시 앉아서 자정과 함께 대학원 자아를 꺼내 굴려야 했다.
스스로가 자처한 이 돌아버린 사이클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논문을 쓰지 않고서는 졸업 방법이 없었다. 기말 고사 문제 조차 도대체 뭔 소린지 해석이 어려운데, 이 환장할 백지 상태에서 논문을 쓴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상상하기 어려웠으며, 더 환장할 노릇은 나는 논문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논문 주제를 정해야 한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논문 주제를 정해서 교수님과 상담을 해야한다는 전공 사무실의 메일을 애써 무시하며,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유튜브를 보며 놀다가 엉겁결에 유튜브 관련된 주제로 논문 주제를 정해버린다. 아무 고민 없이 정한 논문 주제를 낸 자에게 돌아오는 형벌은 가혹했다. 연구 계획을 짜내란다. 뇌피셜로 대충 이러면 되지 않을까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 교수님이 고쳐주시지 않을까 기대해본다(이런 기대를 했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대학원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불행히도 이 계획대로 하라는 교수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이대로요...? 제 뇌가 맘대로 짜깁기한 계획인 척 하는 이 누더기대로요.....?
자퇴를 생각해봤다. 이미 3학기째 재학 중이던 나는 적지 않은 학비를 고스란히 바친 뒤였다. 천 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없던 셈 칠 수 있을까? 일단 난 아니었다. 강렬한 후회가 느껴왔다. 아 이런게 사람들이 말하는 후회구나. 정말 나는 이 길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구나.
울며 겨자 먹기로 이걸 뭐라도 끝내야 한다. 세상에는 나 이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대학원을 동시에 해냈으니까 나라고 못할 일 있겠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자, 그러다 안되면 그 때 돈 날린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대학원에서 도망치자.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누더기가 조금 더 예쁜 누더기가 되도록 애쓰고 있을 때였다.
논문 심사가 세 달 정도 남은 어느 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가 한 대기업으로 인수된단다. 중요한 시기이니 회사에 딱 한명 있는 PR담당자인 니가 잘 커뮤니케이션 기획도 짜고, 실행도 하고, 모기업이 될 사람들과 논의도 하고, 여튼 앞으로 바빠질테니 잘 준비해보라는 얘기였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 급하게 해결해야 할, 하지만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안보이는 이슈까지 생겼다. 사무실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논문은 너덜너덜한 누더기 상태 그대로였다. 논문 지도에서는 매번 교수님께 이 말을 들었다. "논문이 거의 작성이 되질 않았는데 내가 뭐 피드백 줄 수 있는 게 없다".
앞서 말했듯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후회? 아마 없을 거다. 다 때려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 미쳐 있는 나날 중에도 덕질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세븐틴 덕질은 멘탈이 바삭바삭 말라가는 나에게 유일하게 웃을 힘을 주는 행위였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세븐틴의 빛나는 비주얼, 민규가 말했다.
"하면 해, 가보자는 거야."
말도 안되는 일이 떨어지거나, 힘들 것이 뻔해 보이는 일이나, 결과가 부담스러운 일 등이 민규에게 몰아칠 때마다 민규가 하던 말로, 세븐틴 멤버들 사이에 유행어로 번진 말이었다. 이 말은 세븐틴의 명곡 'Homerun'에 나오는 가사이기도 했다.
"우리는 하면 해, 겁이 없지".
얘네는 하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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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게 누워있다가, 노트북을 켰다. 도저히 진도가 나지 않는 내 논문(이라고 우기는 디지털 쓰레기)을 켰다. 한달 째 멈춰있는 챕터가 있었다. 뭐라도, 일단 내 맘대로 소제목이라도 쓰자. 쓰면 써. 소제목을 쓰고 보니 거기에 걸맞는 조사 결과가 필요했는데, 조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서 이미 일찌감치 마음에 돌덩이처럼 가라앉은 구간이었다.
민규가 말했다. "하면 해". 맞아. 그럼 일단 뭐라도 갖다 붙이자. 붙이라면 붙여. 앞에 얘기랑 맞지 않았다. 맞게 엮어보자. 엮으라면 엮어. 회사 일 때문에 너무 피곤했다. 잠이 왔는데 참아야 했다. 참으라면 참아. 버티라면 버텨. 회사 일 때문에 머리아파? 도저히 머리가 안굴러가? 아니야. 굴리면 굴려. 짜내면 짜내. 하면 해. 민규는 하면 한다고 했고, 나도 그렇게, 하면 해.
나는 그때 당시 회사의 그 미쳐 돌아있는 시기에, 나에게 닥친 일들을 실수 없이, 빠트린 것 없이, 무사히 다 해낸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는 늦어졌지만, 나는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했다. 심지어, 우수논문상까지 받고. 이건 자랑이 맞다.
민규는 나보다 8살이나 어리다. 하지만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 민규는 선생님이다. 나는 민규의 '하면 해', 그리고 이 말을 유행어를 넘어서 세븐틴의 아이덴티티로 승화해버린 세븐틴의 '우리는 하면 해, 겁이 없지' 덕분에 정말로 '했다'. 덕분에 나는 목표했던 것을 이뤘고, 뜻밖의 성취를 얻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스승의 은혜를 더욱 깊은 덕질로 갚겠습니다.
글 서두에 나온 민규의 말을 풀 버전으로 보고 싶다면 이 영상으로: https://youtu.be/jYHk1q875UA?si=zsR5nWeSHtJdS5y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