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마지막으로 뭘 할 거예요?"
"엄청 맛있는 걸 먹고 죽을 거예요"
당당히 말하는 사치에의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세상이 끝나든 오늘이 끝나든 나는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죽을 것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쟁쟁한 순위 안에 들어가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시나몬 롤이다. 일본 영화의 특유의 감성에 빠져있던 20대 초반 나에게 발견된 영화 포스터는 앞치마를 두른 3명의 여성의 넓은 호수를 배경 삼아 고즈넉하게 미소를 띠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핀란드 헬싱키에 작은 일본식 식당을 차린 나긋하고 다정한 사치에는 손님이 없는 가게 창밖만 멍하니 바라본다. 텅 빈 식당에 찾아온 금발의 청년은 사치에에게 가챠멘이라는 만화 노래의 가사를 물어본다. 가사를 잊어버린 사치에는 일본인 여행객 미도리를 만나게 되며 함께 가게를 꾸리게 된다. 이후, 마사코라는 중년 여성 일본인이 가게에 들어온다. 그들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어느새 마사코는 서빙을, 미도리와 사치에는 그들만의 요리를 준비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경험들을 맛본 그들의 요리는 점차 헬싱키 사람들을 끌어모으게 되고 카모메 식당에 방문한 손님을 환대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먹음직한 케러맬 색의 시나몬롤의 장면을 보기 위해 선택한 이 영화는 카모메 식당을 중심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만남으로써 사치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을 마주한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콧대를 높이지도 도덕적 우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숨 쉬듯 것과 같은 행동처럼 느껴진다. 그저 오니기리를 한 입 베어 먹을 뿐이다.
식사를 대접받은 미도리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사치에는 미도리의 눈물을 보고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휴지를 건네준다. 눈물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직접 눈물을 닦아주지도,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는다. 이 장면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가장 받고 싶었던 위로의 형태였을 것이다.
미도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치에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감자조림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상대방의 슬픔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며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사치에의 모습을 바라보며 타인의 슬픔을 감히 평가했던 과거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토베 얀손의 무민 계곡의 여름축제를 읽고 있는 미도리, 마사코만의 개성을 가진 우아하게 때가 탄 빈티지 반지, 사치에를 닮은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부엌, 영화를 보는 관람객의 시선에서 무엇하나 아쉬울 것 없는 즐거움을 주는 이 영화에서 수영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사치에를 떠올리며 그저 시나몬롤이 먹고 싶었던 나는 이미 충분히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