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
비를 맞으러 파리를 가야겠어.
좋아, 같이 맞으러 가자.
창밖으로 적당히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살색의 맨발로 웅덩이를 밟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어른으로서 애써 그런 충동을 억누르며 마음을 다잡는다. 영화가 끝난 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황된 내 말에도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의 센스에 또다시 반하고 만다.
이래서 내가 널 사랑할 수밖에 없어.
할리우드 영화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소설을 쓰겠다는 주인공 길의 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약혼녀 이네즈는 그저 길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늦은 밤 파리의 거리를 걷는 그에게 클래식한 옛날 차가 멈춘다. 영결겁에 탄 차를 통해 그는 1920년대를 빛냈던 예술가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 등 예술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들어봤던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현실로 돌아온다. 어제의 일을 이네즈에게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그의 꿈처럼 허망한 망상이라며 혀를 찬다. 시간 여행을 반복하면서 길은 과거의 파리와 현대의 파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길은 마침내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되고, 약혼녀와의 관계를 정리한 뒤 파리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비 오는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던 중 만난 빈티지 가게의 소녀와 비를 맞으며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길은 이네즈의 지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자신의 글이나 고민을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 대화 속에서 길이라는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라는 것은 자고로 너와 나의 존재가 성립해야 한다. 이곳에서 길은 성립되지 못하는 존재였고, 그저 배경에 불과했다.
길의 이야기는 그저 자신들의 지식을 보기 좋게 뽐내기 위해 필요한 재료일 뿐이다. 충고와 조언뒤에 있는 자신들의 알량한 우월감을 뽐내기에 안달 난 그들에게 길은 어쩌면 나와 같은 비릿한 역겨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헤밍웨이에게만큼은 간절히 자신의 소설을 읽어달라는 부탁 한다. 그것은 단지 시대 최고의 작가에게 평가와 조언을 받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길은 싸구려 칭찬이나 동정 어린 응원 따위가 아닌, 그저 대화 속에 자신이 존재하길 바랐을 것이다.
멋지게 각 잡힌 정장을 입고 차에 걸터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와인을 마시는 그들은 교양이 흘러내리면서도 자유로운 히피처럼 보인다. 내가 사랑하는 미치광이 초현실주의자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샤또 오브리옹 보르도를 마시며 처음 만난 주인공에게 막무가내로 코뿔소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을 보며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디테일에 잠시동안 화면을 정지시키고 점잖은 흥분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길은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는다. 낭만적인 상상에 빠진 자신을 비롯해, 누구라도 가끔은 과거에 집착하며 현실을 외면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그는 경험을 통해 배웠을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로 향하는 자동차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온 길은 이네즈에게 이별을 고하며 파리에 남기로 결심하다. 그리고 현재에 만난 새로운 인연과 함께 그토록 사랑하는 파리의 비를 함께 맞으며 영화는 끝을 맞이한다. 나의 시선에서 빗물이 그들의 어깨를 적실수록, 그 장면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