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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박이장에 숨었다.

by 시온



큰 이모의 거실은 마치 비어있는 하늘처럼 크고 넓었다. 자식 없는 부부의 삶터치고는 광활하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집이었다. 이모부는 나에게 김이 피어오르는 라면을 직접 끓여주었고 이모는 고작 라면 하나에도 정성을 담아 몇 가지의 화려한 반찬들을 작은 종지에 정갈하게 담아주었다.

늘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너를 위한 방을 준비해 뒀으니까 아파트 맞은편 중학교로 꼭 진학하라고. 그리고 내 생에 처음으로 '나만의 방‘이 생겼다. 그 방에는 북박이장이 있었고 나는 종종 외출을 갔다 돌아온 큰 이모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 그 북박이장에 숨곤 했다. 이모의 놀란 얼굴과 실소는 초등학교 4학년 짜리의 삶에서는 꽤나 소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뒤 그 재미를 암이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가져가버렸다.



" 제발 이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욕심내지 않을게요.

졸업식만 볼게요. 그것만 보고

그때, 제가 떠날게요."



성모마리아를 사랑했던 이모의 검은 머리카락에 덮인 흰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뽑아주었다. 눈을 감은 채 작은 내 손길을 느끼며 그녀는 고요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피가 섞인 가족들은 그녀를 항상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 취급했다. 그러나 피가 섞이지 않은 수많은 주변의 지식인들은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녀를 추억하며 그녀만큼 지혜롭고 똑똑하고 따뜻한 사람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똑똑하면서 멍청했던 그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무렵, 소독약 냄새가 그득한 병실에서 영원한 숙면을 가지게 되었다. 막내삼촌은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병원에 진열된 책을 발로 차버리고 욕을 뱉었다. 병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오버스럽고 유난떠는 성격이라며 그녀를 바보취급한 삼촌은 그 누구보다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할머니집으로 먼저 돌아가라는 외삼촌의 말에 난생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봤다. 도착한 집에서 할머니는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마룻바닥에서 저 멀리 울고 있었고 그 모습을 뒤로한 채 작은방으로 넘어가 창가에 쏟아지는 빛을 조명 삼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하얀 도화지에 검고 짙은색의 B연필로 선을 그으며 할머니의 울음소리를 방패 삼아 내 울음이 새어나지 않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1.5리터짜리의 눈물을 목구멍 안으로 꾹꾹 밀어 넣으며 나머지 그림을 그렸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모두가 구슬픈 목소리로 구불구불 사투리 섞인 "누비야... 언니야...."를 외치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를 바보취급한 그들의 울음소리는 꽤나 멍청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새롭게 이사한 아파트 내 방에는 붙박이 장이 있다.

그러나 저곳에 숨어봤자 날 찾아주는 이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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