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꿈을 향해 헌신하며,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노력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또 그들과 함께, 지난 세월을 버텨왔고 살아왔다.
매년 명절이면 우리 삼 형제 가족은 형님 댁이 아닌 충주 수안보나 월악산 근처 펜션에서 모인다. 가족들이 모이면 열여덟 명이나 되다 보니, 7년 전부터는 넓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올해 설에는 속리산 인근 보은의 펜션에서 함께했다. 우리는 어김없이 부모님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되새기며 웃기도 했다.
그날 형과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나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야구부에서 운동을 했던 나는, 어느 날 감독 선생님이 어머니를 학교로 부르셨다는 이야기를 50여 년이 지나 형을 통해 처음 들었다. 감독은 내가 야구의 소질이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그 말을 내게 전하지 않으셨다. 혹시나 내가 상처받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유도부에서 운동을 했지만, 역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3학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담임선생님 면담 때 어머니는 반에서 가장 먼저 학교를 찾으셨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선생님은 내게 운동보다는 공부가 더 맞을 것 같다고 조언하셨다. 그 순간부터 나는 운동을 내려놓고 하루 12시간씩 공부에 매달렸다.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 따라다니며 악착같이 노력했고, 결국 운동부가 아닌 입시 성적으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사람들은 놀라워했지만, 나는 단지 ‘지독하게’ 노력했을 뿐이었다.
대학 건축학과 졸업반 때는 졸업작품 준비를 할 때였다. 대부분 친구들은 외주를 주고 전문가의 손을 빌렸지만, 나는 집안 형편상 그럴 수 없었다. 며칠 밤을 새우며 스케치하고 설계하며 투시도를 그렸다. 새벽녘, 내가 밤새 작업하던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렇게 만든 작품은 그해 건축 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돈 주고 외주를 맡긴 작품들을 제치고 내가 직접 만든 작품으로 받은 상이었다.
이런 결과는 단지 재능이 아닌,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단련된 ‘운동정신’과 ‘끈기’와 '지독함' 덕분이었다.
나는 내 아내에게 군 입대 전에 했던 약속이 있다. “나와 결혼하면 열심히 일해서 20층짜리 빌딩을 지어주겠다.” 나는 그 약속의 투시도를 직접 그려서 여자 친구였던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지금도 그 투시도를 간직하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 비록 20층은 아니지만, 강남과 이태원에 소유한 세 채 건물의 층수를 합치면 17층이다. 아내는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약속은 지켰네.”
이처럼 끈기와 인내는 성공의 본질이다. “마음에 들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끈기는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을 넘어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정신력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 포드'의 작가 J.K. 롤링이 출판사에 수십 번 거절당하고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꿈은 끈기 속에서 현실이 된다.
나는 목표를 설정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한 길을 간다. 초등학교 6년 개근, 중·고등학교 6년 개근. 대학에도 개근상이 있었다면 아마 받았을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한 30년 동안도 단 한 번도 개인 사정으로 결근한 기억이 없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아내는 나를 “참 지독한 사람”이라 부른다.
강남 건물주가 된 것도, 결국 이러한 끈기와 인내 그리고 내 나름의 지독한 성격과 생활을 해온 덕분이다. 물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많다. 고 이건희 회장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 가지는 아내, 자식, 골프”라고 했는데, 나도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아내는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자식들은 각자의 길을 가고, 골프는 28년이 되어도 싱글 스코어가 요원하다. 그래도 지금은 아내의 말을 잘 듣고, 자식들과 손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싱글 스코어를 목표로 자주 연습을 이어간다.
이제는 달려온 인생을 돌아보며,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중심엔 ‘글쓰기’가 있다. 은퇴 후 글을 쓰기 위해 십여 년 전부터 매일 아침 카카오톡에 글을 써가고 있으며 글감을 모으고 있다. 요즘은 매일 한 꼭지씩 브런치에 글을 쓰고,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지인들의 삶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담아, MZ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정리하는 중이다. 내 이름 석 자 박힌 책 한 권 출간하기, 그것이 지금의 나의 버킷리스트다.
바쁘게 살아온 날들을 담담히 정리하며, 이제는 지독함을 좀 내려놓고 천천히, 따뜻한 가슴과 너그러운 표정으로 인생의 깊이를 음미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소망한다. 나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꾼 이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내 이야기가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작은 불빛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