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저렴하게 행복을 사는 방법
그렇게 완벽하게 혼자가 된 나는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일도 사랑도 하지 못하니 먹는 즐거움에만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존하느라 여유없이 바쁘게 살아온 탓일까. 신선한 재료를 직접 구입해 만들어 먹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클릭 한 번이면 맛있게 차려진 음식 한상이 내 집앞으로 오는 세상이다. 게다가 집 밖으로 몇 걸음만 나가도 한 끼 식사를 떼울 수 있는 음식점이 즐비했다. 내가 좋아하는 대용량 스낵은 언제나 항상 세일 중이다. 잠에 들기 전, 맥주 한잔과 먹는 스낵은 다른 어떤 즐거움보다 즐거웠다.
길어진 무직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간단하게, 저렴하게 행복을 살 수 있었다. 집 앞의 햄버거 단품은 행사로 인해 파격 세일 중이다. 혼자서 이것저것 신선한 재료를 산다는 것은 시간적이나 경제적으로나 사치로 느껴졌다. 나는 항상 쫒기듯 살아왔기 때문에 간단하게 식사를 떼우는 것에 익숙했다. 오히려 혼자일때는 사먹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일 때가 많았다.
백수생활로 인해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순 있었지만 점점 살이 올라갔다. 건강하게 살이 붙는 느낌이 아니었다. 짧고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인터넷 숏츠, 레토르트, 맵고 짠 음식, 하루종일 눕기 등에 중독되어 갔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단계별로 실행해 나가야 하는 인내심은 학생때 이후로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눈 앞에 급급한 단기적 행복과 계획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도파민에 절여있는 생활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생활에 벗어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중독이란 그런 것이다.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다면 나는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하늘을 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도 언제나 쫒기듯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내가 지금까지 이뤄왔던 커리어, 뜨겁게 사랑했던 전 연인,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은 애초부터 생각나질 않았다. 나는 원래 부터 혼자였기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그것에 대한 외로움은 없었다. 그냥 다 귀찮을 뿐이었다.
그렇게 만사가 귀찮았기에 운동은 저버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짧은 동영상에 중독되어 갔다. 짧다고, 시간을 아끼겠다고 본 동영상은 어느새 두,세시간 넘겨서까지 보고 있었다. 집 앞에서 항상 세일 중인 대용량 스낵을 못 본 척 지나갈 수 가 없었다. 저렴한 맥주 안주로는 정말 이만한게 없었다. 그래도 건강을 챙기겠다고 집밥을 챙겨먹을 때면 항상 맵고 짠 음식이 밥상에 올라왔다. 소화가 잘되는 하얀 쌀밥 두그릇은 순식간에 뚝딱이었다. 역시 불안한 마음에는 탄수화물이 즉효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불만족스러웠다. 내가 계획하고 있었던 공부, 일, 건강에 관한 것들은 계획만 세우기 일수였고 행동하지 않았다. 체력은 점점 약해져 갔다. 자꾸 기대고 싶고 눕고만 싶어졌다.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계획은 그만 세우고 실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한때는 멋부리는 것을 좋아해 주말이면 도심의 편집샵이나 중고의류 매장샵을 들려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살이 오른 탓에 그런 재미마저 잃어버렸다. 분명 일을 그만 둘때에는 내 옷장 속에 넣어둔 다양한 의류들을 입고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했건만. 귀찮았다. 움직이지 않고 라면만 먹은 탓인지 더 이상 맞는 바지가 없었다.
그렇게 여전히 난 무언가에 쫒기듯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으며 더이상 사교적인 활동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무기력과 우울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나는 그렇게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런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자각은 하고 있었으니 개선의 의지는 있었다고 본다.
그렇게 복잡한 머릿속과는 상반되게 내 생활은 더 단순해져 갔다. 겉으로 내색은 안하셨지만 부모님의 한숨소리가 들릴때면 그것은 다 나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는 항상 맵고 짠 반찬이다. 그게 성이 차지 않자 캡사이신이 강렬하게 들어있는 매운소스를 구입해 모든 반찬에 넣어먹기 시작했다. 운동은 동네 카페에 아메리카노를 사먹으러 나갈때 오가며 걷는 그 걸음수가 전부였다. 과거에는 영화도 독서도 좋아한 나였지만 뭔가 쫒기는 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짧은 동영상을 시청하며 잠들기 일 수 였다.
그렇게 나는 시간을 보내며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누군가 내 인생을 바꿔주길 바란 적도 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나이가 됐다. 모처럼 만에 시내를 나갈볼까 했지만 츄리닝바지말고는 맞는 바지가 없다. 그렇다고 큰 사이즈의 바지를 구입하기에는 돈도 자존심도 허락치도 않았다. 작은 변화의 시도도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만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나 싶었다. 그렇게 내 상황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역시 행복했다. 몸이 편안했다. 몸이 편안하니 정신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복잡한 생각들로 내 머릿속은 빼곡하게 채워져 나갔다. 점점 괴로워져 갔다.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잠들기를 바랬다.
Rrrrrrrrrrrrrrrrrrrrrrrr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