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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Nov 03. 2024

11. 달. 카페

달콤 씁쓸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잔이요! 

달. 카페. 초승달 모양의 간판 디자인이 눈에 띄는 한옥카페였다. 무엇보다 통유리로 된 창이 인상적이었다. 

포근한 주황빛 조명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통유리로 된 카페 출입문이 보였다. 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처마 밑에 서니 탄탄한 기와집이었던 옛날 할머니 집을 연상케 했다. 리모델링을 깔끔하게 잘 해놓아서 그런지 그 분위기는 더욱 운치있게 느껴졌다. 특히 대청마루를 깔끔하게 잘 가꿔놓았는데, 통나무로 만들어진 좌식 테이블과 하얀색의 두툼한 방석을 올려두어 두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몇시간이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별과 달을 감상하며 한밤중의 커피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통유리로 된 출입문의 나무 손잡이를 잡으니, '달. 카페' 의 영업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달.카페 

평일: 6PM- 11 PM

주말: 10AM - 6PM


"카페가 평일에는 저녁에만 문을 연다고? 특이하네...사장이 돈이 많은가? 분명 취미로 장사하는 걸꺼야"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건 누군가의 사정이고 나는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절실했다. 꼭 아메리카노가 아니어도 말이다. 다소 거친(?) 하루를 보냈으니 조금은 달달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먹고 싶었다. 나는 낯설었던 하루의 고단함을 잊게 해줄 부드러운 바닐라 라떼 한 잔을 먹기로 결심했다. 


"여기...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 잔 주세요. 먹고 갈께요"

-"네"


한 남자가 혼자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카페의 사장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무심한 듯 차가운 얼굴로, 단답으로 대답을 하고는 바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눈매에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래도 나름 흰 와이셔츠에 검정색 에이프런을 두르고 명찰까지 달고 있으니 격식이 있어보였다. 머리는 바버샵을 다녀왔는지 가르마가 선명하고 멀끔해보였다. 뭔가 잘 꾸며진 모습이었기에 편안한 느낌은 아니었다. 이 한옥카페와 언밸런스한 느낌도 있었다. 마침 남자의 작은 명찰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리스타: 문선 


'재밌네...이름이 문선(moonsun)이라니, 달과 태양.....그 이름대로 '달.카페'인건가......'


남자는 무심하게 상당히 재빠른 손놀림으로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만들어내더니 쟁반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잠깐 눈빛으로 나에게 '커피가 완성됐다'는 신호를 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냉랭한 인상이었다. 얼굴도 표정도 쓰디 썼다. 그러나 뭔가 불친절한 같으면서도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눈치를 보지않고 내가 자리를 맡은 대청마루 위의 좌식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즐기면 그만일 같았다. 


"역시 취미로 장사하나보네. 절실한거 없이 쉬크한거봐"


나는 내 멋대로 생각해버리고는 시원한 대청마루 위에 놓여진 두툼한 털방석에 앉았다. 그리고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밤은 초승달이었다. 

'하......!'


밤하늘의 달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순간 살짝은, 행복한 기분도 들었다. 왜냐하면 한창 직장에 다녔을 때에는 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없었다. 전 연인과 낭만적인 데이트를 해도 말이다. 특히 밤하늘은 더욱 더 볼 시간이 없었다. 오랫만에 고개를 들어 쳐다 본 밤하늘의 달과 별들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온 뒤 날씨 덕분인지 몰라도 말이다. 잠시 여러 걱정들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있었던 고모와의 일...힘든 구직활동...이별 후의 감정...변변치 않은 경제적 사정...아버지의 정년퇴직 후의 변화 등등....나는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 모금을 입에 담아보았다. 

씁쓸함과 달콤함, 부드러움이 동시밀려드는 것이 현재의 나의 감정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혼자서 릴랙스하게 밤 카페를 즐기고 있자니 또 전 연인 희승이 생각났다. 그는 성격이 불같고 거친구석이 있었다. 동시에 부드러운 자상함도 있었다. 나는 쉽게 빠져들었다. 그는 밍밍하지가 않았다. 나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남자였다. 사이가 소원해질 쯤이면 다른 여자와 가까이 붙어 지내며 나에게는 쓰지 않았던 낯간지러운 언어들을 쓰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었다. 그는 나를 자극하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정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나를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를 더 쟁취하게 만들게 싶게끔, 저 잘난 남자는 내 남자라고 좌표를 딱 찍어 버리고 싶게끔 그런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에 나와 함께 찍은 커플사진을 '절때' 올리지 않은 남자라는걸 알면서도 말이다. 알면서도...놓지를 못했다. 이런 남자를 '나쁜남자'라고 하나? 이렇게 표현하는건 너무 유행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치켜세워주는 것 같기도 하다만 딱히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광경을 옆에서 보던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쁜남자는 무슨, 간잽이지'







지난 날의 어리숙하다 못해 어리석었던 것 같은 내 자신이 떠오르기도 하고 센치한 밤이었다. 오늘 달.카페에 들린 것은 잘한 것 같았다. 조금은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만큼은 모든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잠시나마 희승이 떠오르긴 했지만...또 금새 그 기억은 사라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사는 것이 이 순간처럼 매번 평온하다면 어떨까. 먹고사는 걱정,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 내 자신의 자아에 대한 걱정.....이 모든 걱정들이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행복하고 안정적이고...그걸 타인에게서 까지 인정받는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현재 나 자신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타인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스스로를 엉망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엉망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그런 인생말이다. 평온한 순간이 또 자학의 순간으로 넘어가려고 할때 쯤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사장! 여기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잔이요! 아~. 오늘 이상하게 피곤한 날이네"



익숙한 그림자였다. 마치 깡마른 가위손 같은.... 아까 마주친 고모의 이웃. 양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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