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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라이프 Mar 13. 2023

높은 이상을 내려놓자.(스스로 자초한 불행)

(이상, 안벽주의, 비교의식)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더 나은 것을 소유하라고 강조한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가구, 더 좋은 옷 등을 소유해야 좋은 삶이라고 말이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다. 더 좋은 애인,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동료를 소유하고 좋지 않은 인간은 손절하라고 한다. 심지어 가족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것을 소유해야만 행복해지는 태도는 물질과 인간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심리적인 만족감까지 더 좋은 것을 소유하도록 조장한다. 더 좋은 말, 더 좋은 행동 등은 쇼츠나 클립 영상으로 만들어져 저렇게 해야 한다고, 저렇지 않으면 못나다고 욕먹는다.


더 좋은 것이라는 이상의 기준은 점점 높아져 우리는 겉으로 볼 때는 더욱 화려하고, 고상하고, 예의 있어졌다. 


건강한 몸매, 경제적인 성공, 물질적인 획득, 감성 있는 소비성향, 환경과 인간을 사랑하는 태도, 설레는 말투와 몸짓, 본받을 만한 인성 등으로 나를 브랜딩하고 그런 좋은 것들로 완벽히 점쳐질수록 더 나은 인간으로 내세워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갈수록 좋은 것으로 휘감기는데도,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는데도, 왜인지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   



1. 추구와 만족,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높은 이상으로 우리는 모든 것에 신경 쓰게 된다. 모든 것에 신경을 쓰니 모든 것에서 신경 쓴 티가 나지만, 말 그대로 모든 것에 신경이 쓰인다. 모든 것에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고 불편함을 느낀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것을 소유하니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왜 불행을 느낄까? 우리는 왜 더 갈수록 공격적이고, 분노감에 휩싸이며, 자존감이 떨어지고, 한탄하게 될까?


소유욕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은 것을 향한 갈망, 더 나은 것을 원하는 욕구, 그것도 결국은 하나의 욕망이다. 선한 욕망도 욕망이다. 그리고 욕망에는 끝이 없다. 설령 좋은 것을 향한 욕망이라도 욕망의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덜 좋은 것에 대한 비관과 불만이 있다.


무언가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에 불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높은 이상을 추구할 때 생기는 문제는 그 이상과 비교되는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것들에 대한 불만감도 동시에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은 나에게도 불만족하고, 남에게도 불만족한다. 나는 이게 못나고, 저 사람은 저게 못나다. 사실 이건 당연하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세상이기 때문에 사회도, 세상도 다 부족하다.


나도 밉고, 남들도 밉고, 사회가 이래서 싫고, 나라는 저래서 싫고, 세상은 이래서 싫고, 이것 저것이 다 밉고 불만족스럽다면 내 가치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자.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합리화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것에 만족스러워하라고 억지를 부리라는 것이 아니다. 긍정과 부정, 만족과 불만족은 항상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적인 이 세상의 원리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긍정과 만족만 쫒으면 오히려 부정과 불만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둘은 항상 공존하기 때문이다. 더 착한 행동을 원하면 덜 착한 행동이 존재하고, 더 좋은 물질에는 덜 좋은 물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 것을 바라볼 때 덜 좋은 것을 더 많이 바라보게 될 것이다.   



2. 더 나은 것을 얻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더 나은 것을 얻는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것을 소유하게 됐다. 요즘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같은 ott서비스로 수많은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영화관에 상영하는 영화만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정말 향상된 문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ott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수많은 불만을 토해낸다. 몇백 개의 영화를 스킵하면서 볼 것도 없고, 자극도 없고, 가격은 비싸고, 내용도 별로고 형편없다고 툴툴댄다. 내가 생각하는 더 좋은 것에 비해 덜 좋기 때문이다. 더 완벽한 명작들로 채워지고, 더 서비스가 좋을 수 있다는, 더 나은 것을 바라보며 지금의 덜 나은 것에 불만족한다. 예전에 비해 기술이 좋아져도, 서비스가 좋아져도, 그런 것을 이용하고 소유할 수 있어도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더 나은 것을 얻어도 그다음의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차, 옷, tv 등 제품들이 더욱 기술력이 좋아지고, 고급스러워진다.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양상만 본다면 더 나은 것을 누린다고 행복해질 것 같진 않다. 그보다 더 나은 것과 덜 나은 지금의 내 처지를 비교하며 불만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3. 높은 이상은 남들과의 비교의식에서 생긴다?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경험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더 나아져야 한다고 강박받는다. 더 좋은 인간관계, 더 좋은 라이프스타일, 더 좋은 인성, 더 좋은 사랑, 더 좋은 서비스 등등 더 나은 것을 하지 못하는 나는 남들에 비해 불행한 사람, 안 좋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저런 경험들도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인간관계가 좋은지, 사랑이라는게 도대체 뭔지, 올바른 인생은 무엇인지 너무나도 어렵고 버겁다. 당연하다. 저런 경험조차도 완벽하고 이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사랑, 더 나은 인생이어야 한다는, 더 나음에 대한 강박으로 지금의 관계, 사랑, 인생에 뛰어들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너무 많은 고민을 하거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회의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너무 완벽해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는 온갖 화려하고 멋진 모습들이 보여진다. 다른 사람들의 성취하는 삶, 행복한 인간관계, 감성 있는 취미, 멋있는 태도, 로맨틱한 관계, 특별한 경험들을 그렇지 못한 사람과 비교하며 비관하고 미워한다. 그래서 그런 이상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친구, 연인, 동료들을 원망하거나 탓한다. 존중하지 않는 너를 손절하고, 로맨틱하지 못한 인연과 이별한다. 잘하지 못한 나를 미워하고, 실수하는 저 사람이 한심하다.


미디어가 말하는 아름다운 이상을 좇는다. 어쩔 땐 소확행을 추구했다가, 어쩔 땐 워라밸을 추구했다가, 어쩔 때는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고 했다가, 어쩔 때는 채식을 하고, 어쩔 때는 자기 계발을 하며 성취한다고 했다가, 어쩔 때는 알파메일 같은 남자가 되겠다고 한다. 미디어, 트렌드가 이끄는 더 나은 삶을 추종하고 그 이상적인 모습을 동경하고 끌려다닌다. 


계속해서 남과 비교하고, 남들에게 꿀리지 않는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강박받고 그런 이상을 달성하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정말 더 나아져야만 행복한지 말이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화려한 레스토랑에 방문해야만 행복한가? 아니면 그저 좋은 사람과 우연히 들렀던 분식집에서 행복했었나? 비싼 호텔에 호캉스를 가서 햇빛을 쬐야만 행복한가? 아니면 대학가를 거닐며 쬈던 햇빛에도 행복할 수 있었나? 화려한 슈트를 입은 교양 있는 남자와 사귄다는 사실을 자랑해야만 행복한가? 아니면 운동복차림에 털털하고 엉성하게 행동해도 왠지 정감이 가는 남자와도 행복할 수 있었나?


촌스럽고, 형편없고, 멋없고, 실수가 있고,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었다. 꼭 더 나은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관념 속 높은 이상을 추구하면 현실을 덜 좋은 것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정말 그 기준치에 합당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되는가? 나는 왜 그 이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못난 나를 주시하게 되고, 잘난 남들을 바라보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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