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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Sep 20. 2022

머리말

 “아빠 오늘은 무슨 요일이에요? 오늘? 월요일. 내일은요? 내일은 화요일이지. 왜요?” 왜요? 왜 일까? 그전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래 그런 거였다. 어른이었으면 “원래 그런 거잖아. 무슨 소리야.”라고 되물었을 일이다. 어른이 된 우리는 언제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언젠가 배운 뒤로는 원래부터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묻는 것인데 매번 뜻밖이고 기습적이다. 물어 올 때마다 식은땀을 한번 닦고, 미리 정리된 생각이 있었던 것처럼 얼른 머릿속 자투리 지식들을 짜 맞춘 후 태연한 척하며 대답을 한다. 막상 얘기를 해주면 듣는 둥 마는 둥 코를 파거나 창밖을 보고 있다. 나중에 물어보면 또 듣기는 들은 거 같다. 조금 더 자라서는 물어오는 것에 더해 내가 아는 지식을 좀 보태서 알려줄만한 것들도 있었다. 저게 보름달이에요 하고 물을 때, 어떤 달이 차오르는 커지는 달인지 작아지는 달인지 하는 것들처럼. 최대 7연속에 달하던 왜요? 질문공세가 지나갈 무렵 이제 제법 대화가 된다 싶을 때부터는 아이가 물어오는 것 말고도 나도 이것저것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느끼게 된 것부터, 요즘말로 하자면 삶의 꿀팁에다, 좀 거창하게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혜·교훈까지 해주고 싶은 얘기들이 꽤 있었다. 

 감기에 걸려 흘러내린 노란 콧물이 콧구멍 주변에 말라붙어 생긴 나풀나풀한 코딱지를 떼 주면서, 쉬를 하려고 변기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딴청 피우고 잘 벌리지도 않는 입에 밥을 밀어 넣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대부분은 무슨 얘기를 많이 하기는 했는데 둘이 낄낄거리고 웃었던 것 빼고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고, 어떤 것들은 설명하면서 이게 맞나 싶었지만 에이 학교 가면 선생님이 정확히 다시 알려주시겠지 하면서 그냥 적당히 넘긴 것들도 있었다. 좀 더 자라서 하게 된 얘기들 중에는 말을 마치고 나서도 이건 꼭 좀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들도 하나씩 생겼다. 어떨 때는 지금 하고 있는 얘기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지금 하기는 좀 이르고 나중에 좀 더 크면 해줘야지 하는 얘기들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한번은 꼭 해줘야겠다 싶은 얘기인데 아이가 묻지 않거나, 단단히 한다고 얘기를 해주었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잊어버릴 것 같은 이야기, 혹은 얘기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 만한 주제도 있을 것 같은 걱정이 슬그머니 생겼다. 나도 떠올랐던 생각을 모두 기억하는 게 아닌데 어떻게 하면 해주고 싶었던 얘기를 빼먹지 않고 온전히 다 전달할 수 있을까? 강조한다고 많이 얘기했지만 잊어버리는 것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었다. 글로 남겨야겠구나! 생각을 글로 남긴 것을 사람들이 책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책을 써야 하는 거구나.

 그러고도 한참의 시간을 게으름과 싸워야했다. 있지도 않고 나에게 관심도 없는 상상속의 독자들을 나도 모르게 의식하며 이상한 문장들을 써내려가다가 머리를 흔들고 다시 처음에 생각했던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뭘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나?’ 내가 살아오면서 모아 온 느낀 것, 알게 된 것, 깨닫게 된 것들 중에 하윤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꺼내어 정성스럽게 꿰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행여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랑하는 아가 하윤아. 잘 읽어보고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잘 기억했다가 살면서 참고해 보아라. 그리고 너도 한 인생 열심히 살아보고 기회가 된다면 아빠가 쓴 글에서 쓸 만한 것들을 취하고 거기에 너의 생각을 보태서 너만의 목소리로 또 너의 아들딸들에게 전해주면 어떻겠니?

 엄마아빠는 하느님이 아니라서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 너와 함께 할 수 없고 그래서 늘 너를 지켜 줄 수가 없단다. 하물며 보잘것없는 이 책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오직 ‘나는 엄마아빠가 자기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는 귀한 사람이다.’라는 너 스스로의 확신과 경계만이 너의 생각과 행동을 주관하고 삼가게 하며, 네 정신과 몸을 지켜줄 거야.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거라. 사랑한다 우리딸 하윤아.     


                                                                                                                            2020. 9. 30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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