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침대 맡에서 수면제 한 알을 이제 막 삼킨 자정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가 자정 넘어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불길함이 감돌았다. 수화기 너머에는 다급한 남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남편이 12층에서 추락하여 응급차에 실려 가는 중이라고 했다. 함재훈. 내 남편이 맞는지 물었다. 그런 착오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물었다. 위독하다는 단어가 반복되었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말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화기 스피커를 찢었다. 위독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산다는 말인지 죽는다는 말인지 헷갈렸다. 다급한 걸 보면 죽음 쪽으로 기울었을까. 멍하니 앉아 이케아 조명 아래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 수면제 봉투가 놓여 있었다. 스틸녹스 10mg.
욕실에 서서 차가운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절기상 겨울은 지났지만, 아직 봄꽃이 피지 않은 3월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뒤집어썼다. 어금니가 달달거리는 소리를 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수면제는 곧 내 신체 전반에 제 약효를 과시할 것이었다. 어떡해서든 정신을 차리고 운전을 해야 했다. 위독하다는 말은 어떤 조건에서든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남편이 옮겨지고 있다는 병원은 인천이었다. 인천에는 왜 갔을까. 죽으러 갔을까. 머리카락의 물기만 대충 닦아 내고 밖으로 나갔다.
어둠 속에 가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차에 앉아 몸의 상태를 가늠했다. 졸리지 않았다. 졸려도 가야 했지만, 약효가 달아난 기분이었다. 수면제는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이니, 이렇게 큰 충격이 왔다면 효능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았다. 괜찮아야 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창문을 모두 열었다. 찬 바람이 가냘픈 빗물과 함께 다가올 운명처럼 들이닥쳤다.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으로 병원을 검색했다. 한 시간 십 분 거리. 딸아이가 깨어나는 여덟 시까지는 돌아와야 했다. 위독이 죽음과 가깝기는 하나 동의어는 아니므로, 상황만 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나는 차를 몰았다.
운전대에 몸을 바투 붙여서 한적한 도로를 삼십 분쯤 달렸다. 3월의 저문 도시는 얼음 왕국같이 차가웠다. 한기에 노출된 신체 부위들이 감각을 잃어 갔다. 입안에 숨어 있는 혓바닥까지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결코, 잠들 수 없는 상태였다. 운전석 창만 반쯤 열어 놓고 나머지는 닫았다. 비 내리는 심야라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초행길이었다. 상향등을 켤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내비게이션 화면이 사라지고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조성숙이라고 떴다. 남편의 전 와이프였다. 이 여자가 왜. 지금 왜.
“여보세요?”
“조성숙입니다.”
“그런데요?”
“남편이 방금 운명하셨어요.”
여자가 말하는 문장이 이상했다. 누구의 남편을 말하는 것인지. 그러나 그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죠?”
“응급차를 같이 타고 왔거든요.”
남편이 조성숙과 함께 있었다는 말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전 와이프와.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저쪽도 말해 놓고 좀 그런 모양인지 침묵으로 이어졌다. 조성숙의 수화기에서는 차량이 달리는 소리만 들릴 것이었다. 통화의 공백이 이어지자 답답하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남편이 죽었다고요.”
그러니까 그 사실은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다. 이 시간에 조성숙이 직접 전화해서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내가 가고 있었고, 지금 가지 않아도 반드시 가게 되어 있었고, 모든 기관에서 가장 먼저 연락할 사람이 나였다. 이 여자는 무슨 속셈으로 남편의 죽음을 내게 알리는 것일까.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고백하는 이유가 뭘까.
속도를 높였다. 150, 160, …200.
“당신이 죽였어요?”
묻고 싶었다. 그래서 속도를 계속 높였고 화를 내듯 목소리도 높였다. 당신이 죽였어요?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뭐라고요? 내가 왜!”
“진실은 당신만 알겠지.”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다시 내비게이션 화면이 떴다. 나는 속도를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