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로 하는 공부는 없다. 놀이는 놀이 그 자체여야 한다.
공부에 시달리며 집에서 학교로 학원으로 맴돌이하는 아이들에겐 놀 틈도 놀 터도 없음을 아프게 느끼게 된다. 틈과 터가 막힌 현실의 답답함이 그를 인도로 가게 했다. 5년에 걸쳐 네 차례 인도를 드나들며 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의 그 넘치는 생명력과 창조력을 만난다. 그리고 묻는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에게 이 생명의 기운을 앗아간 것일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돌려주어야 하는가. 그 질문과 대답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 소개 글에서 발췌
한동안 공부를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는 이유에서 '놀이로 배우는~'으로 시작하는 교수법과 다양한 활동이 유행이었다. 교과서에도 '놀이'는 빠지지 않는다. 다만 '놀이' 앞에 꼭 무엇인가 붙는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또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수학놀이, 카드놀이, 단어 놀이 등등을 보며 나는 마음이 갑갑했다. 아니, 놀이면 놀이고 공부면 공부지 왜 두 가지를 합체해놓은 것일까 싶기도 하고 물 위에 기름처럼 결코 합해질 수 없는 불가능한 과제처럼 느껴졌다. 재미있게 공부하면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하고, 기억에 잘 남는다고? 정말 그럴까. 나는 좀 고루해서 그런지 힘들게 공부하고 어렵게 찾은 것은 오래 기억에 남고 공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놀이를 접목한 공부라니,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부분을 이용해서 놀이를 통한 공부를 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 물론 그냥 공부보다는 즐거울 수 있다. 허나 아이는 어느 순간 몸으로 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공부라는 것을. 그래서 덜 즐겁고 도무지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 그런 놀이는 짜릿함을 주지 못한다. 배우는 것이 있지 않냐고, 즐겁게 배우는 효과가 있냐고 묻는다면 즐겁게 배운 것은 금방 잊어먹는다고 말하고 싶다. '아~재미있었네.' 하고 끝나면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언어 학습에 있어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해 그것을 놀이식으로 진행했다면 그것은 놀이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조금 재미있게 공부한 것이다. 그러니까 놀았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놀이의 가면을 씌우지 말아야 한다.
그냥 공부할 때 조금 빡세게 하되 여유시간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놀게 하면 좋겠다. 노는 시간을 지켜주어야 한다. 놀이와 공부라는 두 마리 새를 잡으려다 모두 놓쳐버리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노는 데 목적이 있는가. 있다.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것이 맞지만 몸을 움직이고 재미있게 어울리는 것이, 놀이 그 자체를 탐색하고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이 놀이 본연의 목적이 아닐까. 놀이를 가장한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면 거기에 어른들은 또다른 욕심을 넣는다. 놀이를 통해 협력하고 양보하는 방법을 익히기 바라고, 놀이를 하면서 소근육이 발달하고 규칙을 지키는 태도를 가지게 되길 바란다. 물론 놀이를 통해 당연히 길러지는 부분들은 많지만 그것은 그냥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놀이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발 그냥 놀면 안 될까. 놀이 그 자체에 빠져서 신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게 하면 좋겠다. 편해문 작가의 말대로 아이들은 정말 놀기 위해 세상에 왔으니까 말이다.
공간이 좁아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 약간의 공간과 충분한 시간만 확보되면 놀이는 언제든 가능하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놀아보아야 놀 수 있다. 위험하다고 말리거나 뭔가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 잔소리하는 어른만 없어도 신나게 잘 논다. 나뭇가지 하나로 엄마 아빠 놀이를 할 수 있고 선장이 될 수 있는 것이 아이가 가진 힘이다. 장난감이 없어도 모래 가지고 밥을 짓고 성을 쌓을 수 있는 것도 아이라서 가능하다. 사람 2명만 모여도 놀이를 만들어내는 힘을 누가 앗아가고 있는가. 그냥 두자. 신나게 놀게 아무것도 없어도 놀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싸우면 안된다고, 다친다고 잔소리하는 것도 잠시 접어두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놀면서 싸우면서 놀이의 진수를 알아간다. 공간이 인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무궁무진하게 상상하고 놀이하며 해방감을 느낀다. 박물관, 미술관, 체험관, 놀이기구가 많은 놀이터에 가는 아이들이 노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은 나뿐일까. 다양한 체험보다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것은 진한 놀이경험이다.
왜 놀이가 중요하다고 묻는다면 아이들은 놀아야 생기가 넘친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들,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은 대부분 잘 놀 줄 아는 아이들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디에서나 어떤 것으로나 놀이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놀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비축한다.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말을 믿을 수 있다면 모든 부모가 아이의 놀이를 적극 환영할 텐데 싶기도 하다. 진짜다. 잘 노는 아이가 공부할 힘도 갖는다. 놀이라는 가면을 쓴 활동들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노는 시간들이 아이의 생명력을 빛나게 한다.
종이인형과 그 옷을 만들면서 행복하지 않았는가. 길가에 돌을 주워 공기를 하면서 자연과 친해지지 않았는가. 잡기 놀이를 하면서 땀을 흠뻑 흘리지 몸을 충분히 느껴보지 않았는가. 모래를 만지고 파고 쌓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지 않았는가. 숨바꼭질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애틋하지 않았는가.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놀이를 하면서 불안함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는가.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의심이 든다면 놀이터에서 아이를 지켜보지 말고 '어른'이라는 허울을 벗고 순수하게 놀아보길 권한다. 놀아주지 말고 놀기를. 그럼 놀이가 왜 필요한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