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위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이 곁에 있을까. 아니,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교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 답답하다는 부모들을 꽤 만난다. 아이의 성향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너무도 쉽게 평. 판. 충. 고를 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봐야 한다. 그런 습관이 아이의 입을 막고 등을 돌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혹은 옳지 않았는지, 누가 나쁜 것인지, 손해를 보고 있지 않았는지, 그른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평가하지 않았는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한 것이 미숙한 대처인지 잘한 대처인지 판단하지 않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기보다는 그 행동이나 상황에 대해 어른의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판단을 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쉽다. 당연히 어른은 아이가 아직 혼자 해결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마음에 서둘러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래야 아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을 것 같고 덜 헤맬 것 같기 때문이다.
직업병이 있는 나는 집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 당시에 했던 행동과 말, 상황, 엮인 친구들을 평가하고 판단하기를 잘한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해주어야 하고 옳고 그름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취한 말과 행동에 대해 평가하면서 비판하기도 하고 칭찬도 했다. 그냥 들어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딸은 이야기 전에 부탁한다.
“엄마, 편견 갖지 마시고요, 잔소리하지 마시고 그냥 들어주세요!”
사실 아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상황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혹은 억울했는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위로가 필요해서 그냥 이야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떤 평가나 판단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무조건 자기편이라 믿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가. 사실 어른들은 자기 경험이 더 많다는 이유로 충고와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가 고민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기다려주지 못한다. 그냥 얼른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에 성급하게 충고한다. 아이 대신 나설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좋은 방법을 늘어놓고 고르게 하고 또 그렇게 하면 해결된다고 아이 등을 떠민다. 하지만 어른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바로 그 상황에 맞닥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이가 마주하는 상황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의 반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냐고 답답해하지만 사실 우리가 제시해준 것이 정답일지, 아이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것이다. 아무리 어른의 조언과 충고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거나 문제를 해결해준다 해도 아이는 그렇게 하기까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른도 그렇지 않은가. 고민이 있어서, 문제가 있어서 머리를 쥐어 싸고 가슴 아파할 때 옆에 사람이 쉽게 툭툭 던지는 조언과 충고는 도움이 아니라 상처가 된다. 학교 일에 열받고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버럭 하며 이렇게 하라면서 해결방안을 내놓는다. 누가 해결해달라고 했나, 들어달라고 했지 하면서 되려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도 속상해서 이야기해달라고 했는데 실컷 해결방법만 늘어놓는다면 이야기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들어?"
늘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사실 아이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사실 힘들다. 빨리 해결해주고 싶으니까. 아이보다 훨씬 더 많이 산 내 방법이 틀릴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음을 잊고 지내는 것은 '나' 일수도 있다.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난 직설적인 충고와 조언을 잘하는데 가끔 이런 모습을 우연히 깨닫고 나면 부끄러워서 닭살이 돋는다. 내가 투정하던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해서.
내 옆에는 왜 그런 사람이 없는가.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 생각해본다. 아이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을 다해 들어주다 보면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풀릴 것이며, 그 사람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고통을 같이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 옆에서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해 주면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깊은 곳까지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가끔은 부모만, 어른만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커가면서 함께 노력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더없이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