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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Oct 13. 2023

전력질주의 '주'는
달릴 주 인가 술 주 인가

시골 여자 축구_3

© 반반FC 전련분석관


전력 질주의 ‘주’는 달릴 주(走) 인가 술 주(酒) 인가 어째서 나는 자꾸 내가 달리는 모습에 취하고 마는 걸까. 


나는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생각을 했다. “오, 나 생각보다 빠른데?” 생활 운동을 즐겨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꽤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었다. 체육 점수는 대체로 잘 받았다. 한번은 하키 시험을 봤는데 반에서 가장 최고 점수를 받은 적도 있다. (남녀 공학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였을까. 축구를 하면서도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취했다. 나는 축구를 많이 보니 기초 지식이 많을 거고 육아도 오래 했으니까 체력도 좋을 거고 아직 젊으니까 반사 신경도 좋을 것이라는 등.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원인과 결과로 나만의 논리를 펼쳐 나갔다. 그리고 그 이상한 논리에 취해 나는 내가 꽤 빠른 사람이라 결론지었다. 훈련 중 전력 질주를 하며 들리는 바람 소리가 마치 나의 속도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바람 소리는 천천히 뛰어도 들린다) 어딘가 취에 있는 자는 술에 취한 자와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볼 수 없고 자기 내면의 소리만 들리므로, 나의 내면은 열심히 폭주했다.


이런 나의 폭주를 막아준 것은 사람이 아닌 기계, 바로 드론이었다. 우리 팀은 ‘농촌형 여성축구단’이라는 특징 외에도 여러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실력에 비해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는 인력과 장비다. 축구를 뛰는 인원은 열 명이 채 되지 않는데 우리 팀에는 코치, 매니저, 전력분석관, 서포터즈까지 있으며(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을 곳곳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나타난다) 며칠 전 응원단장도 생겼다. 사실 이들의 자발적 동기에 의한 것은 아니고 우리가 그들을 붙잡기 위해 반강제로 역할을 준거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의 성장을 지지하고 지켜봐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작디작은 축구팀에 이렇게 과분한 직함이 사실 조금 이질적이라 느껴질 때가 있는데, 특히 이질적이다 못해 뜬금없기까지 한 이름은 단연 ‘전력분석관’이다. 우리 전력분석관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팀 수비수 S의 남편이자 드론을 이용해 우리 경기나 훈련 영상을 찍어서 올려 주는 사람이다. 우리를 위해 드론을 구매한 것인지 구매한 드론을 위해 우리를 찍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어느 날 드론을 들고 나타난 그는 아주 젠틀하게 양해를 구한 후 하늘 높이 드론을 띄워 우리를 찍어주기 시작했다. 그의 부인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그는 어김없이 드론을 들고나와 우리를 찍어 준다. 우리는 그렇게 찍힌 드론 영상을 처음 보고는 정말이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느낌마저 들었고 그를 ‘전력분석관’자리에 임명하고 추앙하기에 이른다.


어쨌건 다시 나의 내면의 폭주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나는 내가 빠르다는 생각에 도취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팀과 매치를 하고 난 후 정신을 번쩍 차렸다. 경기가 끝나고 밖에서 보고 있던 동생에게 오늘 나 어땠냐고 마치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폼을 잡고 물었다. 동생은 조금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뭐, 전체적으로 괜찮았는데, 조금만 더 빠르면 좋을 거 같다 정도?” 동생은 내가 지금 축구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했는데도 뭔가 기분이 쎄했다. 집에 돌아가 전련분석관님이 올려준 드론 영상을 찾아 봤다. 


하늘에서 찍은 나의 모습과 나의 속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둔하고 느렸다. 내가 상상하던 나는 치타처럼 날쌔고 날렵한 느낌이었는데, 영상 속의 나는 등에 돌을 묶어 놓은 사람처럼 무뎠다. ‘나 생각보다 느렸네...’ 약간 실망하고 많이 부끄러웠다. ‘역시, 사람은 제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해’라는 깨달음과 함께 나의 내면은 더 이상 폭주하지 않았다.



그 후 침체된 나의 달리기 인생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참여한 아이들의 운동회 날이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큰아이가 입학한 이래로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운동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참여하는 체육 행사에 신이 난 과몰입 생활 체육인(=나)은 당연하게도 체육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도착해서야 또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 체육 행사는 엄연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행사이고 나는 체육인이 아니라 학부모였다는 것을. 나를 지나가는 학부모는 모두 이렇게 말했다. “오, 해원씨, 오늘 좀 뛰려나 봐요? 이따 계주 나가셔야겠네~” 나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마치 내가 계주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학교가 좁으니 소문은 무척이나 빨랐으며 딱히 소문이 나지 않아도 이 작은 학교에서 내 모습은 이미 너무 튀었다. 무수한 청바지와 슬랙스 사이에 아디다스 반바지를 입은 사람. 학부모와 체육인 사이에서 애매하게 갈등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축구팀 홍보라도 하게 유니폼을 입고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랬다간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나를 모르는 척하거나 부끄러워했을 것 같아 상상만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내가 체육대회의 마지막 피날레인 계주 선수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같은 편에 있던 부모들은 나의 차림새를 보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모르는 사람들은 뒤에서 조용히 수근거렸다. ‘됐다, 됐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팀 학부모들은 나를 보며 생각 했을 것이다. ‘저 사람 덕분에 나는 안 끌려가겠구나.’


학부모 계주는 남자 다섯, 여자 다섯 명으로 총 열 명의 인원이 한 팀이 되어 달린다. 한 사람당 운동장 반 바퀴, 여자와 남자가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것이 규칙이다. 급박하게 사람을 모으고 정신없이 순서를 정한다. 다들 서로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진 못하기 때문에 대충 정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처음과 끝에 세울 사람은 신중하게 고른다. 이것도 엄연한 승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기대에 찬 아이들 눈빛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의식과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에서 적당한 긴장과 부담이 있는 경기였다. 우리는 이 경기에서 이겨야 하며, 이기기 위해서는 처음과 끝 주자를 잘 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모두의 달리기 실력을 파악하고 있진 못하므로 빠르다고 소문이 난 사람, 혹은 잘 뛰어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 재빠르게 협의한다. 그중 나는 단연 후자의 사람. 그곳에 나와 있던 열 명 중 유일하게 체육복을 입고 있는 사람. 결국 나는 우리 팀 여성들 중 가장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그런데 순서에 맞춰 상대 팀과 두 줄 나란히 서고 보니 나와 같이 뛸 상대 주자는 나와 같은 축구팀인 A이고, 나에게 바통을 전달받을 우리 팀 마지막 주자는 다름 아닌 전력분석관님이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작은 마을에서는 뭘 해도 겹치기 마련이라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도 이 학교의 에이스 주자로 나온 사람들이 모두 우리 축구팀 사람들이라는 것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역시 유니폼을 입고 왔어야 했나.


그렇게 경기가 시작됐다. 곧 뛰어야 하는 주자는 라인 앞에, 다음을 기다리는 주자들은 운동장 안쪽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앞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돌 하나씩은 메고 달리는구나. 그래도 내가 멘 돌은 좀 가벼운 축에 속한 거였구나. 그리고 오직 인간의 몸 하나만으로 짧은 시간 최대한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달리기의 매력에 매료됐다.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의 달리기를 보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축구팀의 명예와 부모로서의 명예, 그리고 아디다스 반바지의 명예를 걸고 온 힘을 다해 내 달렸다. 다행히 나는 꽤 빠른 편 이었고 내 바통을 이어받은 전력분석관님은 더욱 빨랐으며 결국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모든 명예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요즘은 우리 집 어린이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매일 달리기를 한다. 전력으로 뛰고 시간도 재가며 열심이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삶은 매 순간이 전력 질주라는 것을 느낀다. 어린이들은 자기 몸에서 끌어 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뿜으며 산다. 어른이 된 나는 축구에서도 그렇듯 삶에도 전력 질주보다 적절한 완급 조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이렇게 전력을 다해 질주하고 폭주하는(...) 삶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껏 내달린 다음 느끼는 개운함을 아는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인생의 어느 곡점에서 꼭 한번은 내달리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 개운함에 취해 매주 축구를 나가고 내년에 있을 학부모 계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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