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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히 Oct 01. 2022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휴직을 한 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분명히 매일매일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12년을 출근해온 내 몸이 기억하는 것인지, 7시면 항상 눈이 떠졌다.

계속 눈이 떠지는 나를 보며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아침마다 집 앞의 공원을 산책했다.


나는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운동은커녕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늘 가만히 있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그러나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되자, 역설적이게도 나는 움직이고 싶었다.


아침이 지닌 그 특유의 공기가 참 좋았다.

깨끗하면서도 시원한, 마치 여행을 가서 느꼈던 새로운 공간의 공기 같았다.

매일 알람 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

5분만 더 10분만 더 누워있다 급히 출근 준비를 했던 그 시간에,

나는 기분 좋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시간의 그 공기였기 때문에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산책을 하고 싶으면 산책을 하고,

낮잠을 자고 싶으면 자고,

아침에 일어날 걱정 없이 새벽에 자고 싶으면 새벽에 잠들고.

나를 위해 쉬기로 한 그 시간을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불안함이 있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걸일까.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의 나는,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즈음, 20년을 넘게 함께한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우울증으로 휴직을 했다는 말에 고민 없이 나와 여행을 떠나 주는 친구.

3박 4일간의 여행 동안 나는 우울함이라곤 없이 그 시간을 즐겼다.


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 자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늘 연락을 하고,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다.

힘든 이야기도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고마운 친구.

힘들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나를 대신해 화를 내주었다.

함께 여행을 즐기고, 웃을 일이 없던 나와 함께 웃어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끼며 4일을 보냈다.

단지, 약 복용을 위해 친구와 맥주 한잔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


다시 돌아온 나의 일상은 또 반복되었다.

산책을 하고, 낮잠을 자고, TV를 보고, 책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익숙해져 갔다.


오랜만에 나의 일상은 잔잔하게 흘러갔다.

마치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유난히 더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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