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홀릭 보니와 피오나 공주님

미국, 타코마

by 므스므

온 집안이 골동품 천지다.


집주인의 단순한 인테리어 취향이라기엔 거의 골동품 물류 창고 같았다. 물론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얼핏 보면 인테리어 소품으로 보이지만 처음 집안에 발을 디뎠을 때 이건 좀 너무 과한데? 싶었다.


알고 보니 타코마의 호스트 보니는 파트타임으로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동거중인 남자 친구 애런과 빈티지 물건들을 수집, 판매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과연 어느 게 부업이고 전업인지 헷갈린다.


4년 전, 이 집에 이사오며 시작한 일이라는데 남친인 애런도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정도 규모가 되었다 했다. 차고 세일도 가끔 가지만 주로 고인들의 물건이 나왔다는 정보를 접하면 언제든 달려간다고. 마침 이 날도 어느 노부인의 물건 중에서 아주 상태가 좋은 25년 된 니트 카디건을 득템 했다며 보여준다.


옷이 좀 더러운 거 같은데? 했더니 판매 포인트가 그거라며 절대 빨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때가 묻은 그 자체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빈티지 무식자에겐 신기하기만 한 정보도 주었다. 수입이 짭짤하다는데 실제로 소품들의 디자인과 퀄리티가 좋아 보였다.


소품들 대부분이 판매용이라는 말에,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


특히 '말'과 관련된 소품이 많았는데 이것들은 판매용이라기보다, 보니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말발굽 만드는 일을 해온 터라 어려서부터 말과 유니콘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고 했다. 사실 보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보니의 아버지는 본업을 은퇴하시고 지금은 어느 건물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한다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아버지와 절친이 되었으니.


이 집에서 나의 아침 패턴은 오전 6~7시쯤 일어나 세네 시간 정도 줄창 커피를 마시며 거실이나 부엌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보곤 했는데 이 시각이 마침 아버지의 퇴근 시간이었다. 미국인치고 단어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말해주고 유머감각도 꽤 있는 편인 이 아버지, 연구대상이셨다.


은발의 긴 단발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아버지가 며칠 동안 자신의 방을 페인트칠한다고 분주했는데 밖에 나와있는 페인트통 색깔이 '핫 핑크'다. 대화 도중엔 'one of my wives'도 여행을 좋아했다고 해서 속으로 빵 터지기도 했다. 아놔 이 아저씨.


다음 여행지인 시애틀에 가면 약에 취한 홈리스들이 많은데 이들은 매우 전투적이니 절대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말을 걸면 무시하고 무조건 빨리 걸으라는, 정말 아버지 같은 조언도 해주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스탠리의 소식을 받고 눈물 콧물 흘리며 제대로 설명도 못하던 나를 보니와 함께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했다.


그들의 일상에 아주 잠깐 끼어들어와 울고 웃다 떠나는 이 낯선 여행자에게, 자신들의 집을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내 남은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던 딸과 아버지. 고마웠던 건 저랍니다.


그나저나 난 이 아버지 이름을 모른다. 응??



어두운 회색빛의 긴 털과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가진 '피오나'는 이제 4살이 된 이 집 고양이다.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프린세스 피오나'인 걸 보면 <슈렉>의 그 공주님이 맞나 보다. 역시나 외출냥이었지만 밤엔 엄마가 있는 2층 침실에서 자고 낮시간 대부분은 외출보다 지정석 소파에 파묻혀 졸고 있었다. 하지만 공주님 이어서일까. 엉덩이 쪽에 궁디팡팡을 시도하다 그만 그녀의 발톱에 제대로 찍혀버렸다.


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고양이 아니거든!이라고 말하는 피오나 공주님


피오나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SNS에 올린 판매글을 보고 사 왔다고 했다. 보니는 보호소 출신의 고양이들은 위생이나 질병면에서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집사다. 피오나가 사냥하는 걸 워낙 좋아해 가끔 쥐나 작은 새를 물고 온다길래 외출냥이로 키우는 게 불안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보니의 대답은 아주 심플했다.


피오나가 원하니깐.


역시 또 한 번의 '틀림과 다름'의 문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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