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농장 라이프'라고 소개된 데이비드의 집은 정말 시카고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 글자 그대로 농장이었다. 닭과 오리, 염소가 우리 안에 살고 있고 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숙식을 제공받는)들이 있으며 스태프도 있었다. 게다가 이 집은 하숙집도 겸하고 있어 교환학생인 대학생들도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필이면 호스트인 데이비드 부부는 만날 수가 없었는데 내가 도착하기 전날 지인의 결혼식 참석차 코스타리카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농장이란 것과 하숙집이란 것을 미리 알았고 호텔 수준의 청결을 기대하지 말라는 데이비드의 소개글을 이미 봤음에도 옷장문을 여는 순간 쏟아져 나온 날파리들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 상상해 보라. 하얀 벽면에 선명하게 보이는 무수한 검은 점들을.
게다가 뉴욕에서부터 끌고 온 감기와 천식 때문에 홑이불 하나만 달랑 준비되어 있던 침실 상황에 절망해 버렸다. 데이비드에게 솔직하게 따졌다. 먼지 하나 없는 이불과 환경을 기대하진 않았어. 하지만, 벌레떼라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니?
미국 서쪽으로 넘어가는 연결 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시카고 라, 오래 머물 생각도 없었다. 이번 숙박비는 그냥 날리고 호텔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데이비드에게서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정말 정말 미안하고 이렇게 솔직히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자기에게 해결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말없이 떠난 뒤 최악의 후기를 남기는 게스트들이 종종 있는데 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데이비드는 추가 요금 없이 내가 머문 방의 1.5배 정도 비싼, 좀 더 넓은 방으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제 3일 뒤면 떠나는데 뭐하러 짐을 또 쌌다 풀었다 하나 싶어 데이비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카고 주택가 한복판에 매일 아침 신선한 달걀이 준비되는 숙소를 만나다니!
이 집엔 농장 동물들 말고 총 3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는데 2층의 주침실을 거의 벗어나지 않아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스텔라'와, 나갔다 하면 농장의 닭들을 공격해서 늘 현관문을 열 때 조심해야 하는 프로 탈출러 '펌킨', 그리고 스텔라의 동생이자 가장 마음이 쓰이고 안쓰러웠던 '스탠리'가 있다.
잠깐 복도로 나온 스텔라를 보긴 봤으나, 본 게 맞을까?
음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나갔다 하면 농장의 닭들을 괴롭히던 요주의냥 펌킨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채 무서운 식탐을 보였던 스탠리
회색이 많이 섞인 카오스 스탠리는 우리 집 깜장이를 많이 떠오르게 했는데 만지면 뼈밖에 잡히지 않는 말라깽이 고양이였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식탐을 보이고 미친 듯이 먹어대는데 어쩜 저렇게 마를 수 있을까. 간식을 한번 줬더니 사흘 내내 나만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운다. 숙소를 예약할 때 데이비드도 스탠리가 아픈 것 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으니 아이의 상태를 인지는 하고 있다는 소린데.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지점 중 하나가, 고양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틀림과 다름'의 기준이었다. 한국의 기준에 따르면 서양인들이 고양이를 키우는 방식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우리는 입양동의서에 '외출냥이로 키우지 않는다'가 필수 조건으로 들어가는데 서양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이다.
장난감과 캣타워 따위 없기도 하고(냐옹신과 미야옹철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소리) 집안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비엔나의 고양이 모시모시의 털빗은 사람이 쓰는 롤빗이었다! 마치 한국은 강남 8학군 엄마들 같고 서양은 대안학교를 찾는 엄마들의 느낌이랄까. 이 두 부류의 엄마들을 가지고 '맞다, 틀렸다'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결국 문화와 환경, 인식에 대한 차이일 뿐이라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닥쳐보면 이건 아니지 싶은 일이 많아 괴로웠다.
왜 아픈 스탠리를 저 상태로 방치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아이가 똑바로 걷지도 못하고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위태위태한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런 아이가 먹을 것을 찾아 사람이 먹는 게 무엇이든 덤비고 보는 장면은 진짜... 이 모든 것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 때문이라고 백번을 되내어보지만 아픈 스탠리를 보는 건 정말 고통이었다.
시카고를 떠난 지 2주쯤 후에 데이비드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12년 하고도 6개월간 자기네들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줬던 스탠리가, 지난 금요일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동물병원 수의사 앞에서 평온히 떠났다는 걸 보니 아마 안락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이든 서양이든 집사들은 다들 자신의 고양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 거다. 그것에 옳고 그름을 논하는 건 잘못된 것, 이라고 믿고 싶다.
그저, 스탠리가 이제 아프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며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