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최강 오지라퍼 크리스틴과 윈스턴&준

미국, 시애틀

by 므스므

시애틀의 호스트 크리스틴의 집에는 총 세 종류의 삶이 있다.


25살인 딸네 부부가 사는 지하 1층과 크리스틴 본인이 사는 2층, 그리고 입양된 젊은 총각 니콜라이와 게스트가 머무는 1층.


응? 입양이라고? 롱롱 스토리를 짧게 들려주자면(니콜라이의 표현) 어찌어찌하여 자신의 엄마와 이모까지도 크리스틴을 알게 되었고 시애틀에 정착하려고 맘먹었을 때 그녀가 방을 하나 내주었단다. 엄마처럼 자기를 돌봐주니 거의 입양이 된 걸로 보면 된다나.


이 우주 최강 오지라퍼인 크리스틴의 끝장판 에피소드는 옆집 사는 4살짜리 리트리버 '무스'와 관련이 있다. 주인이 바쁘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좁은 데크에 누워만 있는 무스를 데리고 크리스틴은 하루 2번씩 근처 공원엘 간다. 차로 10분은 가야 하는 공원을, 남의 집 개와 함께 말이다. 무스는 미친 듯이 달리며 공놀이를 했는데 너무 신이 나서 자기 혀를 깨물어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놀았다.


하루종일 저 데크에 앉아 크리스틴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무스


비가 오는 날 한번 따라나섰다가 내 유일한 방한용 패딩 재킷과 청바지를 진흙 범벅으로 만들어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무스를 보며 개들도 웃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무스를 산책시키지 못하는 날이면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라는 크리스틴.


그녀의 오지랖 레이더엔 나도 걸려버렸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강당을 빌려 '콘트라 댄스'(남녀가 두 줄로 마주 서서 추는 춤으로, 원래는 영국에서 건너왔지만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퍼진 미국식 전통 춤)를 추는 모임엘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 물었다. 평소의 나라면 기겁을 하며 거절했을 일을, 호기심에 덥석 물어보았다.


크리스틴의 남자 친구인 잭의 차를 얻어 타고 시애틀 북쪽의 한 교회로 향했다. 가자마자 한 무리의 춤바람(!) 난 할머니, 할아버지들 한복판에서 이리 던져지고 저리 던져지고... 결국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다리는 풀렸으며 머리는 빙글빙글 도는,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조차 귀찮은 나 같은 사람에겐 중노동의 시간이었다.


춤바람1.jpg 춤바람(!)의 현장, 정말 노익장이 대단들 하시다


하지만 강당 가득 넘쳐흐르던 이 노인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염이 되는 건 느꼈다. 힘들어도 웃음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잭이 그런다. 사람들이 널 보고 웃는 건 비웃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가 네 친구들이라서 그런 거야. 처음 만나는 누구라도 편견 없이 대하는 이런 마인드가 바로 미국이란 나라의 대체 불가 장점이지 싶다. 다음 날 근육통은 뭐 따놓은 당상이었고.




크리스틴의 고양이 '윈스턴'과 '준'은 둘 다 보호소 출신이었다. 6개월령일 때 이 집에 왔다는 준은 무척이나 겁이 많아서 2층 크리스틴의 공간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았는데, 입양 당시 부엌 리모델링을 하며 공사 소음이 심했던 것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엄마 외에 그 어떤 사람도 다 싫다는 준은 민감 덩어리 고양이였다.


늘 줌으로 당겨 찍다 보니 화질이 엉망인 준의 사진들


반면 윈스턴은 전 주인에게 애기가 생겼다며 2살경 버려졌던 아픔이 있는 고양이다. 바깥에 대한 호기심이 큰 거 같아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하루는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건너집 차고에 2주가 넘도록 갇혀있다 아사 직전 구출된 것이다. 건너집 주인의 말로는, 차고를 환기시키려고 문을 열어뒀다가 그 뒤로 날씨가 나빠져 한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고. 무튼 이런 이유로 지금은 식탐 대마왕이 된 윈스턴.


매일 밤 니콜라이의 방과 내 방을 오가며 밀당을 하던 윈스턴


크리스틴에게 물었다. 윈스턴에게 그런 일도 있었는데 밖에 내보내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크리스틴은, 물론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윈스턴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귀다가 헤어질지 모르는데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냐, 고 되려 묻는다.


역시 이 문제는 틀림의 문제가 아닌, 다름의 문제다. 이해하긴 어려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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