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많은 아줌마 코라와 선샤인&갤러

미국, 라스베이거스

by 므스므

내가 호스트의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역대급 사고를 쳤다.


라스베이거스의 호스트 코라는 열쇠를 바깥에 두고 셀프 체크인을 하도록 했는데 딱 한 가지 주의를 주었다. 바로 고양이들이 열린 문으로 나가지 못하게 조심하라는 것. 그래서 현관문도 조심히 열었고 재빨리 닫았다. 문제는 마당에 있는 수영장을 구경하려고 잠깐 거실문을 열었는데...


나는 숙소 도착 30분도 되지 않아 '선샤인'을 잃어버렸다.


길가로 나있는 마당 문은 나무 패널로 만들어져 액체설이 있는 고양이는 나가도 사람은 절대 나갈 수 없는 문이었다.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선샤인을, 속수무책으로 봐야 했다. 전속력으로 현관문을 거쳐 밖으로 나갔지만 선샤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주차된 차 밑을 보기 위해 네 발로 기면서 '써어언샤아아이이인' 하고 이름을 부르며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밖에 나와있던 주민들에게 노란 털뭉치 고양이를 못 봤는지 물었으나 이들도 도리도리였다.


근데 설사 내가 찾았다한들 나한테 잡히기나 할까? 부른다고 올까? 손발이 덜덜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일단 911에 신고하자.


잠깐, 고양이 실종을 911에 전화하는 게 맞나? 라스베이거스의 동물보호협회를 찾아야 하나? 아니다. 일단 코라에게 이실직고부터 하자.


<코라, 비상사태야. 내가 선샤인을 잃어버렸어. 뭘 어떻게 해야 하니? 일단 온 동네를 뒤졌는데 없어... 정말 미안해...>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동물보호협회 전화번호라도 찾기 위해 집으로 들어왔다. 그. 런. 데. 마당 쪽 거실문 앞에서 얌전히 식빵을 굽고 있는 선샤인. 내 이노무 시키를... 기쁜 소식을 바로 코라에게 전했더니, 그제야 내 문자를 본 코라의 답변.


<걔 탈출 상습범인데 잘 돌아오니깐 너무 땀 빼진 말어. 이따 보자>


나로 하여금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한 장본묘, 선샤인


숙소의 형태가 아파트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내가 만난 모든 고양이가 산책냥이었는데 라스베이거스는 집사의 의지로 고양이들을 '가둬두는' 곳이었다. 코라의 말에 따르면 이 동네는 길고양이도 많고 개들을 풀어 키우는 집들이 많아, 고양이들이 영역싸움에 휘말릴 수 있어 내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역시나 집사의 선택 문제다.


사고는 쳤어도 애교쟁이였던 선샤인과 달리, 밖에 나가는 걸 무서워하고 내가 다가가면 소심하게 얼음이 돼버리는 '갤러'는 고속도로에서 구조된 고양이였다. 구조자인 코라 친구가, 비싼 병원비로 망설인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자신이 치료비 전액을 지불하고 데려와 버렸다고 했다.


갤러의 언어는 이상했다. 내가 손을 내밀면 야옹이라는 소리보다 으응 혹은 에엥하며 울어대는 게, 싫다는 표현인 줄 알면서도 그 소리가 듣고 싶어 자주 괴롭히곤 했다.

소심한 갤러는 현관문을 열어놔도 나가지 않았다




코라는 콜라와 핫초코를 입에 달고 살았고 말의 절반에 'F' 워드가 들어갔다. 아놔, 이 아줌마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했었다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말도 못 했다. 정은 또 얼마나 넘쳤는지. 이 집에서 네가 못할 건 아무것도 없으니 냉장고의 음식도 뭐든 먹어도 되고 하고 싶은 것도 다하면서 지내라거나, 정보가 맞는지 물었을 뿐인데 거주민만이 살 수 있는 교통카드를 사다가 선물이라며 덥석 안겨주는 식이다.


그녀가 어디 나에게만 이런 친절을 베풀었을까. 내 방이 아닌 또 하나의 게스트룸에 들어가 보니 벽면이 온통 코라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한 메시지로 그득하다. 벽을 방명록 대신으로 활용하다니 역시 코라 아줌마의 스케일은 달랐다.


코라집2.png 문제의 수영장, 방명록이 되어버린 방, 코라의 가족사랑


특히 코라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집안이 형제들의 오래된 사진과 조카들의 사진들로 넘쳐났다. 근처 요양병원에 올해로 85살이 되신, 잘 걷지는 못해도 정신은 온전하시다는 엄마를 자주 찾아뵙는다고도 했다. 나 역시 엄마와의 마지막 3년을 요양병원에서 보냈던 터라 자신의 집 근처로 엄마를 모신 코라의 이유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형제들 중 싱글이라고 다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법 같은 건 없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병든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집이 되었든 요양시설이 되었든)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고통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나같이 K-장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의 이유나, 엄마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그 짐을 자진해 떠안은 코라나 어떤 이유에서 출발했건 우리의 희생이 전제다.


이제 내 어깨에 올려진 건 아무것도 없다. 후회 같은 것도 없다. 과거의 내 선택은, 다시 돌아가도 할 선택들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그 희생에 대해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선물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끝나간다.



** 다음 여행지인 뉴질랜드는 친구와 동행하며 [두번째 뉴질랜드] 라는 매거진으로, 고양이가 아닌 내 여행 자체에 집중하며 쓴 100개의 일기와 하루 하나씩 그려간 그림일기로 [고양이를 여행하다] 라는 매거진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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