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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어릴 적엔 콩, 파, 나물 안 먹었어

콩,파,나물

by JIA Feb 02. 2025

아빠가 콩밥을 좋아해서 엄마는 매일 콩이 들어간 쌀밥을 지었다. 밥통을 열면 하얀 밥알들 위에 콩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귀엽고 동그란 완두콩. 줄무늬가 독특한 강낭콩은 밥통에서 열린 열매처럼 뽀얀 빛깔로 폭신한 밥 위에 가지런히 누워있다. 

엄마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밥통 뚜껑을 열고는 주걱을 넣어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그어 십자가를 만든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라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지만 콩은 감사와는 별개인 입맛의 문제였다.


내가 콩밥을 안 좋아하니 엄마는 뒤적거리기 전에 흰밥 쪽을 한 주걱 떠서 주곤 했다. 완두콩은 동글동글 작고 밥풀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아 어쩌다 입에 들어가도 그냥 넘길 수 있었지만, 두툼한 강낭콩은 다행히 쌀과 잘 분리되어 젓가락으로 하나씩 골라낼 수 있었다. 

팥이 들어간 날 밥은 붉은 밥알과 그 사이에 녹은 팥이 으깨져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먹어야 했다. 팥 하드인 비비빅을 빨아먹다 보면 팥이 하나씩 들어가서 먹을 수밖에 없었던 팥맛의 친숙함이 있었기에 팥밥은 그냥 먹었다. 대보름날은 오곡밥을 먹는 날이라 했다. 작은 콩들이 골고루 버무려진 밥은 쌀을 골라내는 게 빠를 만큼 여러 개의 잡곡들이 서로 찰지게 달라붙어 있으니 골라낼 수도 없었다. 오늘만 먹으면 되니 마음을 내려놓고는 떡을 먹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며 각종 나물들과 몇 수저 먹고 나서 다 먹었다며 밥상에서 일어났다.  

    

콩이 몸에 좋으니 일부러라도 먹야하는 나이가 된 나는 가끔 콩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어 동글동글한 완두콩을 한주먹 사와 밥에 넣어 짓는다. 그럼 어김없이 애들도 콩을 왜 넣었냐며 물어본다. 애들이 골라낸 콩을 내 밥그릇에 올려 한 숟가락 듬뿍 뜨면서 말한다. 

"콩이 얼마나 좋은 건데 골고루 먹어야지" 엄마가 나에게 해던 말을 내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다.  

    

어른이 되고 먹기 시작한 건 대파다. 요리를 많이 하다 보면 대파가 단비와 같은 맛을 좌우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왜 그렇게 파를 골라내기 바빴는지 생각해 보니 한식에는 다진 마늘과 파는 필수양념 재료이다. 아이들이 파를 골라내 남편 국그릇에 건네어 주는 모습을 보니 뭐라 할 수가 없다. 크면 입맛도 달라지니.


파는 역시 어른이 돼야만 알 수 있는 맛이다. 보글보글 샘솟는 뜨끈한 설렁탕에 수북이 올려진 파를 국물에 빠뜨려 먹으면 오늘도 수고했다는 위로가 전해진다. 떡볶이에 초록 대파잎은 떡볶이 길이만큼 썰어 넣고 떡, 어묵, 파를 올려 같이 먹어줘야 한다. 대파 흰 부분을 얇게 잘라 파기름을 만들고 돼지고기를 볶으면 맛이 풍미해진다. 계란말이에도 송송 썬 파를 넣고 굴려준다.


마늘 못지않은 파향기 또한 입안에 오래 남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지만, 삼겹살과 먹는 파채는 개운하다. 파채를 올린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한잔 들이켜면 묵혔던 감정이 쑥 내려간다. 얼큰해 보이는 빨간 국물에 대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육개장은 대파국이라고 이름을 파꿔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대파는 언제나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운명의 채소이다.

  

나물의 맛을 알게 될 때는 무르 잊은 어른이 된 중년의 나이다. 각종 나물에서 계절의 향기와 깊은 맛이 묻어나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친구가 선물로 받았다며 강원도 나물세트를 나에게 양도했을 때 하는 말은 "너 이런 거 잘해먹잖아"였다. 엄마가 여행에 다녀오면 지역 특산품을 가득 사들고 오던 때가 이해가 안 됐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의 손맛을 조금씩 따라가고 있다 


나물이야말로 사 먹고 마는 반찬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물반찬을 잘한다는 건 이웃들 사이에서도 고수로 불린다. 나물은 국간장, 들기름,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파, 마늘만 들어가는 간단한 조리법이지만, 은근한 정성과 손맛이 필요한 반찬이다. 나물이 가진 계절의 풍미를 해치지 않기 위해 간은 소심하고도 심심하게 한다. 

이웃들과  밥 먹으러 가도 청국장, 곤드레밥, 쌈밥등 구수한 콩과 나물, 채소 메뉴만 먹는다. 기름진 음식보다 깔끔한 채소가 좋아지고 있다.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나처럼 천천히 콩, 파, 나물과 친해지는 시간이 오겠지.


고기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는 고기에 마늘종, 깻잎등을 항상 곁들여 먹는다. 할머니 김치는 뭐든 좋아하는 아이가 파김치만은 오랫동안 보류해 두고 있었으나 드디어 고기와 파김치를 돌돌 말아먹더니, 감탄한다.

음..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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