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지나쳤는데, 마음이 머물렀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이렇게 따뜻하게 바꿔 놓을 줄은 몰랐다. 엘리베이터 안, 스치듯 만난 낯선 이. 그저 평범한 아침이었고, 나는 그저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들려온 한 어르신의 덕담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덮어 주었다. 아주 짧은 순간, 아주 작은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말은 사라졌지만 온기는 남았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나를 오늘 하루, 더 다정한 사람이 되게 했다.
아침의 공기는 투명한 유리잔처럼 서늘하고 맑았다. 내 숨결이 공기와 부딪히며 흰 김이 되어 피어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나는 오늘도 평생학습관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일부러 더 일찍, 느긋하게 걷고 싶어서였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나를 정돈하는 시간이었다. 도심의 소음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는 어딘가 속삭이듯 다정했고, 맨발로 아침 햇살을 밟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몸은 적당히 데워지고, 마음엔 고요한 잔잔함이 퍼졌다.
도착한 건물 앞,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니 잠시 뒤 문이 ‘딩’ 소리를 내며 열렸다. 텅 빈 공간 속 차가운 금속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탔다. 이윽고 어르신 두 분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의 걸음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갈잎처럼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나는 본능처럼 문 닫힘 버튼 위에 손을 얹었다. 그분들이 다 탈 때까지, 엘리베이터라는 사각의 작은 방이 무심하게 닫히지 않도록 말이다.
손끝에 전해지는 기계의 미세한 떨림. 문턱을 넘는 그들의 발걸음마다 작은 쉼표가 찍히듯, 공기는 잠시 멈췄다. 모두 타신 것을 확인하고서야 버튼에서 손을 뗐다. 그 순간, ‘칙’ 소리와 함께 문은 천천히 닫혔고, 엘리베이터는 위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작은 공간 속에는 서로의 체온과 숨결이 고요히 섞여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손에 쥔 노트의 모서리가 살짝 습기를 머금고, 가방끈은 따뜻하게 팔목을 감싸고 있었다.
하나, 둘, 층수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또 움직였다. 나는 내릴 층에 도착했다. 안쪽에서 나가야 했기에 몸을 숙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합니다, 먼저 내릴게요.” 내 목소리는 밀짚모자에 닿는 햇살처럼 조심스러웠고, 살짝 엉긴 공기를 헤치며 앞으로 나왔다. 작은 어깨와 어깨 사이를, 배려와 조심으로 지나며 나섰다.
그러자 문득 뒤에서 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맑은 종소리처럼 울려왔다. “수업 열심히 듣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 말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언뜻 들린 그 한마디가, 보일 듯 말 듯한 햇살처럼 마음을 감쌌다. 고개를 돌려 어르신을 보려 했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이미 닫히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인 그분의 미소는 겨울 햇살처럼 희미하면서도 따뜻했다.
나는 그대로 복도에 잠시 멈춰 섰다. 그 말 한마디가 이렇게 오래 머물 줄은 몰랐다. 말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 따뜻함은 속으로 조용히 번졌다. 나는 그저 수업을 들으러 온 길이었을 뿐인데, 어느새 한 문장의 위로를 품은 채 서 있었다.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그 짧은 인사는 하루를 바꾸는 마법이었다. 한 사람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마치 찻잔에 천천히 퍼지는 꿀처럼 내 하루를 달콤하게 만들었다.
말은 공기처럼 가볍지만, 때론 온기처럼 무겁게 마음을 감싼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주 잠시 스친 자리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는 긴 하루의 무게를 덜어 주는 선물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가장 짧은 만남일지라도 그 안에 진심이 담긴다면, 그건 오래도록 남는 온기가 된다. 닫히는 문 너머, 열린 마음 하나가 오늘 하루를 포근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한 가지를 발견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유 없이 피어나는 네 개의 맑은 샘이 있다고 했다. 그 샘은 누군가를 향한 연민이 되고, 때로는 조심스레 물러서는 겸손이 되고, 한마디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이 되어 스치듯 내 곁에 도착한다. 나는 그날, 엘리베이터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사람다운 마음의 가장 순한 얼굴을 본 것만 같았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순간이지만, 나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날의 말 한마디는 멈춰 선 시간 속에 작은 불빛처럼 반짝였고, 나는 그 온기를 하루 종일 품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엘리베이터 안이,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 줄로 가장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문은 닫혔지만 마음은 열렸고, 아주 짧은 순간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 사이의 온기란 결국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설명되지 않아도 스며들고, 이름 없이도 마음에 남는다. 오늘 내가 받은 그 말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하루에 조용히 햇살 한 줄기처럼 머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