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둔 기프티콘처럼, 나도 내 행복을 아껴둔 걸까?

by 꿈담은나현

우연히 들은 한마디가 머릿속 깊이 스며들었다. 마치 조용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그 여운이 가슴 깊이 남았다. 순간 공기마저 잠시 정지한 듯, 내 눈앞의 풍경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복잡한 고민도, 끊임없는 계획도 필요 없었다. '행복하면 장땡'이라는 단순한 말이 의외로 깊었다.


지인은 커피를 주문한 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화면을 내리던 손끝이 잠시 멈추고, 커피 향이 코끝을 스치며 주변 소리에 집중하게 했다. 커피 추출기의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 잔을 부딪치는 작은 찰칵 소리, 은은한 원두 향이 어우러져 익숙한 카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마치 물결처럼 흘러와 내 귀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아, 난 다 포기했어. 그냥 행복하면 장땡이야."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순간 멍해졌다. 다 포기했다고? 결혼, 연애, 취업.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텐데. 나는 요즘 블로그에 취업 정보를 정리하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 사람은 너무나 단순하게 결론을 내려버렸다.


"뭐? 그럼, 이제 뭐 하고 살 거야?"


옆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포기를 선언한 친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그냥 되는 대로 살 거야. 스트레스받는 것도 지쳤어. 굳이 힘들 필요 있어?"


‘정말 저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괜찮은 걸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어쩐지 나도 모르게 저 사람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진짜 저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인생이 좀 더 가벼워질까?’

생일마다 받는 카페 기프티콘이 떠올랐다. 매년 지인들에게 받는 기프티콘을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게 나름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친구를 만날 때, 가끔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기프티콘을 꺼내 들고 카페로 향했다. 나는 이 작은 쿠폰들을 모아두고, 언젠가 더 좋은 날이 오면 써야지, 더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야지, 그렇게 미루곤 했다.


그런데 저 사람처럼 모든 걸 포기하는 태도를 가져본다면 어떨까? 계획도, 미래도, 심지어 카페 기프티콘도 미루지 않고 당장 써버린다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혀끝에 닿는 부드러운 거품이 사라지는 순간, 깊은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온기가 긴장을 서서히 풀어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짧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기프티콘을 아껴 쓰느라 고민하던 날들, 더 좋은 날이 올 거라며 기다리던 순간들. 사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날이 아닐까?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만 기프티콘을 써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그냥 기분 좋을 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였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포기해야 할 것은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습관’이 아닐까?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과정이 우리를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걱정 속에서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취업을 고민하고, 관계를 고민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프티콘을 사용해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불안도, 고민도, 걱정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지인은 내 앞에 놓인 케이크를 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 우리. 케이크까지 시켰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액체가 몸속 깊이 스며들며 잔잔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자연스러웠다.


"응, 그냥 행복하면 장땡이래."


우연히 엿들은 대화 한마디가 내게 주는 교훈은 단순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미뤄두고, 더 나은 타이밍을 기다리면서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프티콘을 미루지 않고 지금 쓰기로 한 것이 아주 작은 변화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삶은 마치 갈림길이 끝없이 이어진 미로 같다. 어디로 가든 길은 있지만, 어느 방향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완벽한 날을 기다리지만, 사실 완벽한 날은 오지 않는다. 모든 걸 포기하고 무계획으로 살라는 뜻이 아니라, 너무 많은 걱정 속에서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는 의미였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화면 속에 정리된 기프티콘 목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손끝이 가볍게 움직이며 한 장을 선택했다. 아직 몇 장이 더 남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또 언제 쓰지?'라는 생각이 스쳤다가, 곧 스스로 피식 웃음이 났다. 기회도, 행복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화면을 터치하며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자고.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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