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내 손을 꼭 잡아줄 '나'를 만나게 된다.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10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스물다섯 살.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치기 시작한 나이는 생각보다 아팠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슴속에 품었던 기대와 꿈을 안고 첫 직장에 발을 들였지만, 세상은 꿈꾸던 대로 흘러주지 않았다. 나는 늘 ‘해야 해.’, ‘버텨야 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했고, 지쳐도 흔들려서는 안 됐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새 잿빛 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눈을 감으면 검은 파도가 가슴을 휘감았고, 숨소리마저 낮게 가라앉아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왜 이렇게 버거운 걸까.’ 질문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푸른 하늘 아래 모든 이가 제 길을 달리는 듯 보였지만, 나는 회색 미로 속을 맴도는 아이 같았다. 친구들은 하나둘 형형색색의 날개를 펼치고 훨훨 날아갔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더욱 움츠러들었고,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수치심이 가슴 밑바닥에 모였다.
처음 선택했던 길은 내게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만큼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기에만 급급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광대처럼, 위태로운 줄 위에 서서 웃고 있을 뿐이었다. 웃음 뒤에는 나조차 외면했던 외로움과 두려움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결국 나는 멈추기로 결심했다. 아주 깊은숨을 들이쉬고, 조심스럽게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속삭여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시작했다. 손에 쥔 걸 모두 내려놓고, 제과제빵, 직업상담사 같은 전혀 다른 길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러 회사를 경험하며 무엇이 내게 맞고, 무엇이 맞지 않는지를 조금씩 알아갔다. 물론 그 과정은 여전히 두려웠다. 마음속에서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또다시 길을 잃는 건 아닐까?'. 휘파람처럼 가느다란 불안의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내 등을 토닥이며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고 속삭여주었다. 포근한 겨울 햇살 같은 온기, 희미한 풀꽃 향기처럼 번지는 따뜻함. 그 품속에서 나는 얼어붙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꾹 눌러 담았던 눈물이 쏟아지고, 나조차 모른 척했던 외로움이 터져 나왔다. 온기는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내가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나를 감싸주었다. 그 순간, 세상의 어떤 평가나 기준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사람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난 뒤, 나는 아주 천천히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잘 해내지 않아도 괜찮았다. 반짝이는 결과가 없어도 괜찮았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길이었지만, 어딘가에서 조용히 피어난 들꽃처럼,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도 내 안에는 작고 따뜻한 불빛 하나가 꺼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단단한 내가 있다는 것을. 넘어지고 주저앉았던 수많은 순간이, 결국 나를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되게 해주었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10년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는 포기하지 않을 거고, 결국엔 너만의 길을 찾아낼 거야.
그러니, 제발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아줘."
스물다섯 살의 나는 어쩌면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모든 게 캄캄했으니까. 밤하늘마저 별빛을 잃어버린 듯, 세상이 새까맣게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해줄 수 있다.
‘그 어둠을 지나온 네가, 지금 이렇게 웃으며 이 말을 전하고 있다고.
그러니 괜찮아.
하루하루가 울고 싶은 날이어도, 가끔은 무너질 것 같아도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너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면서 결국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될 테니까.’
앞으로도 긴 인생길을 걷다 보면, 또다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외롭고, 무섭고, 혼자라고 느낄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잊지 말자. 가장 가까운 곳에, 늘 '나'라는 가장 소중한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아무리 힘들어도, 나만은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세운다. 아직 충분히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더 잘해야 한다고 다그치곤 한다. 하지만 삶은 생각처럼 빠르지도, 계획처럼 완벽하지도 않다. 때로는 천천히 걸어야 하고, 때로는 걸음을 멈춰야 할 때도 있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처럼, 눈에 띄지 않아도 꿋꿋이 피어나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모든 시간을 통과해 지금 여기까지 온 나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10년 전의 나야, 고맙고 또 고마워. 어두운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줘서. 그 덕분에 지금 나는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새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어.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자. 언제나 너를 믿고 사랑할게. 그리고 언젠가, 오늘을 미소 지으며 돌아볼 수 있을 거야.
네가 지나온 모든 어둠은 결국, 너를 가장 빛나는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