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한 통이 뭐라고, 마음이 봄처럼 녹더라

by 꿈담은나현


놓친 건 손이 아니라, 마음이었는지도 몰라요.


며칠 전, 카카오톡에 조그만 케이크 아이콘이 떴다. '축하해줘야지.' 싶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놓친 건 손이었지만, 지키고 싶었던 건 마음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이름. 메시지 한 줄이면 될 텐데, 나는 괜히 폰 화면만 들여다보다 잠금 버튼을 눌렀다. 망설이는 마음이 손보다 빨랐다. ‘지금 말 거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지금도 나를 기억할까?’ 같은 생각들이 작은 안부조차 밀어냈다. 마음은 있었지만, 끝내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이 내 안에서 고요히 눌려갔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한때는 매일 웃으며 마음을 나누던 사람이, 어느새 연락 한 통 없이 멀어진다. 사람과의 거리는, 손끝에서 파도처럼 밀려나다가 어느새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함께 걷던 길이었는데, 문득 고개를 돌리면 더 이상 곁에 없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지나 보내고, 또 가끔은 내가 먼저 손을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말들은 가슴속에 눅눅한 물기처럼 맺혀 무겁다. 마음은 여전한데,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 하면 이유 없이 주춤거리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 어색하다는 이유로 미뤄버린 안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진다. 마치, 꺼진 방 안의 불을 다시 켜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카카오톡에 뜬 생일 알림은 작은 기회처럼 느껴진다. 단 몇 초면 될 인사인데도, 하루는 수묵화처럼 번지고 저물어간다. 결국 보내지 못한 안부를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에서 작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조용히 쓰리다.


“그냥 연락해 볼까?”라는 생각은 자주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지금 연락하면 어색할까?’, ‘이제 와서 괜찮을까?’ 같은 걱정이 어깨를 누른다. 그렇게 꺼내지 못한 말이 쌓여 스스로 벽을 만든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도, 마음은 늘 그 뒤에서 망설인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보단 마음을 접어 넣는 쪽이 익숙했고, 다정한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음 안에는 전하지 못한 안부가 겹겹이 쌓여만 갔다. 내 안엔 오래전 꺼진 방처럼 조용한 구석이 있었고, 누군가를 들이는 일은 그 방에 불을 켜는 일과도 같았다.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두려웠다.

그래서였을까.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가는 사람들을 보면 늘 따뜻해졌다. 그들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살피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줄 안다. 그들 곁엔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는 눈 녹은 땅 위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다.


예전에 그런 사람을 가까이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그 친구는 직원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고 옆자리 손님에게도 미소로 대화를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건네는 따뜻함이 공간을 부드럽게 바꿨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사람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동안은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표현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말 뒤에 숨어 있던 건 어쩌면 두려움이었다. 다정한 말을 건넨 뒤 돌아오지 않을 반응이, 내민 손이 허공에 닿을까 봐. 그래서 괜히 무심한 척, 바쁜 척, 애써 마음을 감췄다.


사람을 놓는다는 건 언제나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처음엔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다가, 어느새 그 사람과의 말들이 떠오르지 않게 된다. 무심코 흘려보낸 말 한마디, 받지 못한 안부 인사, 건네지 못한 위로들. 모든 것들이 조용한 파도처럼 다시 돌아와 마음 한 부분을 적신다.


예전에 한 번, 용기 내어 연락한 친구가 있다. 한참 연락이 뜸했던 사이였지만, 망설이다가 ‘잘 지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읽음 표시가 뜨고, “오, 너다!”라는 답장이 왔다. 그 순간, 웃음이 났다.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그렇게 관계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었다.


말 한마디에, 잊고 지냈던 따뜻함이 내 안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연락 한 통이 뭐라고, 마음속 묵은 감정이 봄처럼 녹아내린다니. 안부 하나 보냈을 뿐인데, 심장이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웃음도 함께 날아올랐다. 봄은 그렇게, 익숙한 듯 낯선 얼굴로 불쑥 돌아오곤 한다.


그제야 알았다. 다정함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마음에서 길어 올린 작은 등불이라는 걸. 등불은 처음엔 희미하지만, 자주 켜야 길이 밝아진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결국, 먼저 마음을 건네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누군가의 손을 놓아본 적이 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어서, 때로는 몰라서. 그리고 그 손이 내게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뒤늦게 알았던 순간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내내 말없이 지나친 감정들이, 그 짧은 인사 한 줄에 조용히 살아났다. 텅 빈 방 안 창문을 열자, 먼지 대신 봄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바람은 따스하고도 낯설었다. 익숙했던 그리움이, 이제야 비로소 나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다시 손을 내민 그 순간, 멀어졌던 마음은 봄처럼 조용히 돌아왔다.

keyword
이전 09화친구니까, 한 걸음 물러나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