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다. 혼자 밥을 먹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따뜻하고 조용히 나를 풀어줄 줄은 몰랐다. 낯선 공간, 낯선 음식, 낯선 고요함. 하지만 그 안엔 익숙한 나 자신이 숨어 있었다. 그날 나는, 한 그릇의 밥에서 자유를 처음 배웠다.
익숙한 것들이 점점 무겁게 내려앉던 시기였다. 하루는 같고, 마음은 자꾸 다르게 느껴졌다. 반복되는 일상이 뿌연 안개처럼 나를 잠식했고, 조용한 방 안에서조차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다독이는 방법도 잊은 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휘청일 만큼 불안했다. 도망치듯 어디라도 떠나고 싶었다.
조용히 검색창에 손가락을 올렸다. ‘혼자 여행’, ‘혼밥’, ‘혼영’ 같은 단어들을 떠돌다 마주친 단어, 템플스테이.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양평의 용문사가 눈에 들어왔다. 회색 기와 위로 내려앉은 초록의 고요함이 낯설게 아름다웠다. 예약을 마친 뒤, 떠나기 전날 밤이 되자 마음속에 잔잔한 파도가 번졌다.
잘 갈 수 있을까, 너무 어색하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은 낯섦이 현실이 되려는 순간, 내 안의 걱정들이 벽지처럼 천천히 펼쳐졌다. 혼자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상상이 머리를 채웠다. 혹시 길을 헤매면 어쩌지, 어색한 침묵 속에 혼자 방황하게 되진 않을까. 하지만 되돌릴 수 없음을 아는 순간, 마음이 묘하게 차분해졌다.
“될 대로 되라지.” 그 말 하나가 불안을 누그러뜨렸다. 지하철은 철로 위를 차분히 미끄러졌고, 내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낯선 장소였지만, 어쩐지 괜찮을 것도 같았다. 사찰에 도착하기 전, 점심을 먹어야 했다. 배보다 마음이 먼저 허전했다.
‘혼밥 가능한 식당’을 찾고, 조용한 가게 하나를 골랐다. 그곳은 골목 안쪽,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식당이었다. 문을 열자 은은한 메밀 향과 따뜻한 나무 냄새가 흘러들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햇빛은 창가를 따라 테이블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적막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메뉴는 단출했고, 나는 비빔막국수를 골랐다. 잠시 후 도착한 그릇 안엔 고운 붉은 양념이 흐릿한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노란빛 주전자에 담긴 육수는 유리컵을 따라 고요히 흔들렸다. 면을 들어 올려 한 입 넣는 순간, 매콤함이 혀끝에서 퍼지며 감각이 깨어났다. 육수를 마시자, 목을 따라 흐르는 따뜻함이 가슴 한가운데까지 번졌다.
속이 풀리는 게 아니라,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조용한 식탁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낯선 장소, 낯선 메뉴, 그리고 낯선 나. 모든 것이 익숙해지는 데에는 한 그릇의 따뜻한 국물과 천천히 씹어 삼키는 시간이 필요했다. 육수는 마치 나무 사이를 흐르는 햇살 같았다. 눈으로는 맑고, 맛으로는 따뜻하고, 마음으로는 오래 남았다.
조용히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낯선 일이었다. 낯섦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나를 감싸는 고요한 이불처럼 느껴졌다. 대화도 없고, 맞춰야 할 눈치도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작은 선택들이 쌓이고, 조용한 결심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혼자였지만 혼자만은 아니었던 시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나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땐 바람이 잎사귀 사이를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풀 냄새가 살짝 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햇살은 어깨를 부드럽게 누르며 괜찮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혼자라는 말이 외로움이 아닌 용기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용기는 한 끼의 식사에서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혼자 밥을 먹는 일이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주말의 늦은 점심, 가끔은 퇴근 후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혼자는 여전히 어색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허둥대지 않는다. 나를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서툴지만, 그 서툶이 싫지만은 않다. 한 끼의 밥이, 그렇게 나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하지만 어느 날엔 다시 혼밥이 낯설게 느껴졌다. 평온은 순간이었고, 마음은 다시 흔들렸다. 이번엔 예전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그 흔들림 속에서 나를 붙잡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익숙해졌다는 건 반복이 아니라, 다시 낯설어져도 괜찮다는 걸 아는 힘이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은 단지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그것은 마음을 천천히 씹어 삼키는 시간이고, 내 안의 고요를 꺼내어 다독이는 일이었다.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내 속도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먼저 식지 않도록, 조용히 나를 먼저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위로는, 나 자신과 마주 앉은 한 그릇의 자유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했던 시간, 작고 조용한 자유는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았다. 지금도 가끔, 골목 끝 작은 식당을 떠올린다. 따뜻한 육수, 낮은 음악, 빛이 머물던 테이블. 그건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나에게 건넨 작은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