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은 떠났지만, 기억은 여전히 내 김 속에 앉아 있다. 포장마차 앞을 스칠 때마다 나는 그를 떠올린다. 붕어빵 틀에서 지글거리는 소리, 종이컵에 담긴 어묵 국물, 떡볶이의 붉은 향기. 겨울이 오면 그런 풍경들 사이로 어김없이 그가 스며든다. 이 계절만 되면, 마음 한 자락이 늘 그 자리에 가만히 남아 있다.
그는 익숙한 길을 먼저 걷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술을 마신 날이면 정해진 의식처럼 포장마차를 찾았고, 매운 떡볶이와 어묵 국물로 하루를 덮었다. “매운 거 먹고, 따뜻한 국물 마시면 다 괜찮아져.” 그 말은 그 자체로 안도감이었다. 약속보다 먼저 도착한 마음이었다.
손이 시리다고 말한 날, 그는 아무 말 없이 어묵이 꽂힌 종이컵을 건넸다. 그 온기 하나가 겨울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오래 머물렀다. 말보다 조용했던 사이, 침묵이 전부였던 계절. 따뜻한 숨결 하나로도 충분했던 날들이 있었다.
불빛 아래 붉게 물든 떡볶이, 어묵 국물에서 피어오르는 김. 그는 한입 베어 물고 웃었고, 나는 조용히 그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유리창에 겹치던 두 사람의 그림자는 가까웠지만, 마음은 조용히 어긋나 있었다. 닿을 수 없는 손길처럼, 감정은 늘 투명한 벽 너머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닿지 않는 채로 나란히 머물고 있었다.
그는 먼저 걸었고, 나는 그 흔적을 따라 걸었다.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을 한 칸씩 밟으며 걷던 날들. 그 거리감마저 편안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 거리엔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질문처럼, 마음은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혼자 갈게.” 그 말은 웃는 얼굴로 건네졌지만, 마음은 이미 닫혀 있었다. 붉은 떡볶이는 유난히 매웠고, 어묵 국물은 낯설게 싱거웠다. 말없이 식어가는 온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잡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도, 어쩌면 그와 닮은 방식이었다.
그 후로 연락은 없었다. 변명도, 인사도, 이유도. 사라지는 사람은 소리 없이 멀어지고, 남겨진 사람은 조용한 자리에 남는다. 그를 붙잡지도 않았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기억은 잔상처럼 맴돌다, 김처럼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진다.
겨울이 다시 오면, 나는 또 골목을 지난다. 포장마차 앞에서 종이컵을 건네받고, 후후 불며 국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 순간, 익숙한 웃음소리가 귀에 맴돈다. 말도 없고, 얼굴도 없지만, 감정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따뜻함만큼은 아직도 똑같다.
어떤 날은 여름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불현듯 떡볶이 냄새가 스쳐 지나가면, 그가 피식 웃던 모습이 문득 머릿속을 차지한다. 계절과 무관하게 불쑥 찾아오는 기억은, 마음속에 살아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는 이미 사라졌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움은 한 계절에만 머물지 않는다.
며칠 전, 휴대전화를 정리하다 오래된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어묵 국물 미쳤다 진짜.” 단 네 단어. 그 안에 한겨울이 통째로 담겨 있었다. 나는 메모를 지우지 않았다. 지운다고 해서, 그 사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첫눈이 내리던 날, 일부러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골목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뽀드득거리는 눈 소리와 잿빛 바람이 낯익었다. 모든 풍경이 정지된 화면처럼 느껴졌고, 그 길은 여전히 그를 기다리는 듯했다. 말은 없었지만, 기억은 내 옆을 걷고 있었다.
얼마 전엔 혼자서 포장마차에 다시 들렀다. 종이컵을 들고 국물을 마시는 순간,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겨울이 차올랐다. “예전엔 둘이 먹었어요.” 말은 작게 흘러나왔고, 사장님은 들었는지 모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나는 빈자리를 오래 바라봤다.
지금은 어묵 국물을 마셔도 웃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거울 속 내 입술이 후후 불고 있는 걸 보면 문득 놀란다. 마음은 멈췄지만, 몸은 그를 흉내 내고 있었다. 기억은 행동이라는 껍질을 입고, 감정이라는 체온으로 살아 움직인다. 스며든 감정은 때때로 그 사람인 척 다시 살아난다.
예전엔 국물보다 사람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국물만 남았다. 익숙한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마음은 자꾸 그 시절로 돌아간다. 혼자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인 듯 행동한다. 입술을 데지 않게 불어 먹는 습관도, 그가 남긴 방식이었다. 그건 사라진 사람이 내 안에 아직 머물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좋아했던 건 어묵이 아니라, 어묵을 건네던 그의 다정함이었다. 떡볶이의 매운맛보다 더 강렬했던 건, 그와 함께 나눴던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날카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모든 순간은 나를 조용히 감싸주었다. 사람보다 먼저 사라지는 건 말이고, 가장 오래 남는 건 감각이다. 추억은 말이 아닌 침묵으로 씹히고, 입안이 아닌 마음에서 오래 남는다.
기억은 끝나도, 여운은 언젠가 남은 온기처럼 몸에 스며든다. 끝내 말로 옮기지 못한 마음은, 버릇처럼 같은 자리만 돌고 돈다. 그렇게 누군가는 나를 떠났고, 나는 여전히 그 사람 근처에서 맴돌고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을, 매년 돌아오는 계절이 기억하고 있었다.
따뜻했던 국물은 다 식었지만, 나는 아직 입김 속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