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ture
2016년 2월, 나는 집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때의 나는 서울 대학로에 있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맘에 차는 대학에 안착한 참이었다. 내 대학생활의 로망은 일을 하는 거였다. 성인이 되었으니, 쓸 돈 정도는 내가 벌 수 있도록. 또 남는 분은 저축해 학기가 끝날 때면 여행의 꿈에 부풀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선택한 일은 극장의 집을 지키는 일, 바로 하우스어셔(house usher, 관객 안내원)였다. 대학생이 극장 주변을 맴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을 뿐이다. 이 작은 시작이 5년 넘게 이어질 줄을. 그 시간 동안 만난 이들이 나의 일상이 되고, 이렇게 기록으로 남을지를.
프론트 오브 하우스(front of house), 줄여서 하우스는 극장에서 관객에 열려있는 부분을 의미한다. 극장의 공간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백스테이지와 무대 그리고 대기실을 포함하는, 그러니까 '환상의 공간'이다. 이 구역에는 관객이 들어오지 못한다. 공연이 공연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반짝이는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모든 비밀이 이곳에 숨어있다. 두 번째는 이 이야기가 뿌리내릴 '실제의 공간'이다. 극장 전체에서 첫 번째 분류를 뺀 나머지를 의미한다. 극장 입구부터 매표소, 로비, 객석, 화장실까지 모두 포함한다. 이 공간을 지키는 것이 하우스어셔의 일이다.
간단히 말해 하우스어셔는 극장의 집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불편한 옷과 신발을 두른 채 꽤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한다거나, 인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무전을 들으면서 관객과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최고의 어려움으로 꼽고 싶지 않다. 가장 큰 노력을 요구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바로 마음의 집을 지키는 일이다. 화가 단단히 난 관객이 쏟아내는 비속어를 들을 때, 제대로 된 휠체어 좌석 하나 없는 객석 때문에 관객을 돌려보낼 때, 동료가 마음을 다쳐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할 때. 그때마다 극장의 집은 지어졌고, 내 마음의 집은 무너졌다.
마음의 집은 극장을 지키며 여러 번 허물렸지만, 새로이 돋았다. 일을 하며 위협이 늘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외부의 힘이, 영 못쓰게 된 마음 집의 벽을 부수기도 하니까. 이 벽에 꼭 맞는 무늬를 바를 용기도 북돋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의 시작에는 늘 이전 모습의 철거가 전제되는 법이다. 편안한 환경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아팠다.
두 개의 집을 지키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물론, 두 집 다 지키는 데에 성공한 경험은 몇 없다. 되려 둘 다에 실패한 적은 무척 많아도. 그럼 뭐 어떤가! 그때의 경험을 복기하는 것으로, 나는 내 마음의 집을 다시 짓게 될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나의 말이 누군가의 집을(그것이 현실의 집이든, 극장의 집이든 또 마음의 집이든) 튼튼히 지켜줄 한 장의 벽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