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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Sep 21. 2022

고맙습니다, 즐거운 관람되세요!

act 1 scene 2

내가 가장 많이 내뱉는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먼저 자주 처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말을 써넣은 뒤 결과를 냈다. 절반이 넘는 경우에서 '고맙습니다'가 1위로 꼽혔다. 함께 말을 고르던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수민, 너 고맙다고 할 때 톤이 얼마나 사무적인지 알아? 버튼이 눌리면 소리를 내는 인형 같아. 식당에서 같이 밥 먹을 때, 네가 감사를 몇 번이나 말하는지 세 보려고 한 적도 있어. 나는 답을 물었다. 너무 물 흐르듯 말해서 자꾸만 카운트가 엇나가더라. 실패. 모두가 쌉쌀하게 웃었다.


이제는 버릇이 되어버린 '고맙습니다'에는 근원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비스 제공자인 하우스어셔에게 감사는 그칠 수 없는 습관이다. 극장은 많은 사람이 어울리는 곳이고, 다양한 종류의 일이 벌어진다. 이에 공통으로 쓰일 수 있는 인사가 고마움의 표현이다. 티켓을 확인하면서도, 담요를 내주면서도, 휴대전화를 꺼 달라고 하면서도, 잊고 가는 소지품이 없는지 다시 보아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도 감사는 나올 수 있다. '안녕하세요'는 처음 만났을 때뿐이고, '안녕히 가세요'는 마지막 배웅 때문이다. 인사를 빼먹자니 어쩐지 불친절한 응대가 되는 것 같다. 상대가 가끔 나타나 존중이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극장이 그리는 여러 순간 중에서도, 감사가 유달리 꽃피는 때가 있었다. 바로 객석 오픈부터 공연 시작까지의 사이였다. 객석 정리를 마치고 무대 점검이 끝나면,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관객 입장을 시작했다. 보통은 공연 시작 30분 전이었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이 순간이 하우스어셔가 가장 분주해지는 시점이다. 나는 이 찰나를 좋아했다. 덕분에 이때의 감사는 물결처럼 쉬웠다. 공연을 바라며 극장을 찾은 관객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즐거운 예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입에서는 고마움이 새어 나왔다. 기대는 어렵지 않게 나에게 되돌아왔다. 


고마움의 표현은 본래 오고 또 가는 것이었나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나와 누군가의 감사는 짝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관객이 티켓을 들고 객석 문 앞에 와 수표를 요청하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티켓을 확인했다. 보통 공연명과 좌석 등급, 날짜를 봤다. 다른 공연 티켓을 들고 우리 게이트로 오지는 않았는지, 객석 2층 관객이 1층으로 잘못 향하지는 않은 건지, 배송받은 티켓 때문에 날짜를 착각한 것이 아닌지를 거듭 보아야 했다. 눈이 잰걸음으로 티켓을 읽을 동안, 입에서는 주의사항 안내가 나왔다. 커튼콜만 플래시 없이 촬영이 가능하다거나, 공연 도중 퇴장할 경우 재입장은 어렵다거나 하는 말들이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나는 꼭 고개들 들어 관객이 얼굴을 보았다. 감사의 타이밍은 이때였다. 표를 받아 든 그는 내게 다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내가 기다린 건 뭐였을까. 내가 객석이 열리는 순간을 기대한 건 왜였을까. 내가 감사를 부지런히 건넨 건 무얼 바랐기 때문이었나. 내가 고마움을 말한 건, 마음의 집을 지킬 힘을 얻기 위함이었음을 깨닫는다. 감사는 사건의 결과에 대한 평가인데, 나는 어떤 일을 만들어내기 위한 근거로 감사를 건넸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누군가가 돌려주는 친절을 원했다. 나는 관객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적게 품었다. '감사합니다'를 일을 그만둔 지금껏 남발하는 것도, 장난감처럼 흘리듯 말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테다. 


그래서 감사를 배설한 과거의 나를 이해한다. 돌아오는 친절은, 언제든 일이 날 수 있는 극장에서, 내 마음을 지키는 하나의 방편이었으니. 누군가가 버릇처럼 건넨 감사일지라도 듣고 싶은 그때의 나였으니까. 


허물어진 마음의 집을 가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빈 껍데기라도 남은 친절을, 그 모순을, 붙잡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내가 조금이라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돌아온 감사 때문이었다. 마음 적은 감사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지만, 여기에 틈이 있다는 확률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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