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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Sep 30. 2022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에게는 닫혀있는 집에 관해

act 2 scene 1

하우스어셔의 존재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그 값은 '환대'가 될 거다. 극장을 찾는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다정한 사람. 관객이 어떤 옷을 입었든, 어떤 음식을 먹고 왔든, 어떤 길을 밟아 이곳에 도착했든. 유효한 티켓이 있다면 그 관객은 환대받아 마땅하다. 환대의 의무는 내게 주어진 것 중 가장 선명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일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관객들을 도왔던 때, 누군가를 반가이 여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배웠다. 일을 그만둔 지금도 여기에 변함은 없다.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나도 감정과 생각이 있는 사람이니 화가 나서 그랬다.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내 마음의 집에 여전히 남아 나를 떳떳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순간이 있다. 나의 응대가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일을 생각하면 깊은 절망이 느껴진다면서도 이에 대해 충분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극장에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평상시보다 판매된 좌석이 많았고, 현장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 마음속 소란은 두 배였다. 휠체어 관객이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큰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응대 프로토콜을 알고 있었고, 휠체어 좌석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다른 공연에서 자주 보던 관객이었으니까. 다른 포지션에 있는 안내원에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때 오만이 나를 찔렀다.


관객은 화장실을 찾았다. 휠체어로 진입 가능한 화장실을.


무색한 고백이지만, 그때 처음으로 건물에 있는 장애인 시설의 위치를 떠올렸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느라 그를 기다리게 했다. 누군가 걸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보다, 답에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휠체어 좌석에 안내받은 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나를 불렀다. 좌석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예매 시 휠체어 좌석은 단일 등급으로 운영되며, R석만 이용이 가능하니 그에 응당한 가격을 지불하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고. 하지만 객석을 찾아보니, 배정받은 좌석의 시야가 아래 등급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거였다. 관객의 말은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실제로 그 좌석의 시야가 그랬고, 그래서 근처 좌석은 모두 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공연 시작 전이었기에, 나는 관객에 관람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전액 환불 조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연락처를 받아 공연기획사에 전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나는 즐거운 관람 되시라며 살가운 척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공연이 시작한 뒤 수표 한 티켓을 정리하면서, 회사 보고를 작성하면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벌어질 줄 몰랐던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었다. 알면서도 회피하는 나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아니. 다 알고 있다는 믿음을, 충분히 생각했다는 자신을, 그러니까 그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착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연 토픽을 다루는 온라인 매체에서 인턴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극장의 접근성 문제를 알리겠다면서 글을 쓴 경험이 있다. 내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정책 부족과 인식 저하로 침해되고 있다. 장애인을 관람객으로도 여기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해, 선진국은 사회적 협의와 정책 연구를 통해 장애인을 공연의 창작자로 존중하고 있다. 하루빨리 환경이 개선되어 우리나라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이 발생하기를 바란다.


기사 배포 후 다양한 반응이 엇갈렸다. 어떤 독자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틀린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무례하고 무지하며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는 존재에 몸서리가 일었다. 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누군가만 지속적이고 비가역적인 손해를 입고 있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아. 목소리를 높여야지. 생각을 하고 좀 살자고요 우리. 오늘 내가 먹은 욕쯤이야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자아도취에 빠졌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기사를 썼던 시절과 달라진 것이 별반 없는 상황, 피곤한 몸과 건방에 쩌든 머리. 장애인 관객을 안다고 생각했던 1시간 전의 나,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1시간 후의 나. 그러면서도 기어이 조금이나마 깨어있다고 생각하며 자존심만 떠메는 나. 꼴랑 며칠의 업무 시간을 들여 몇 줄을 흩뿌려두고 내 할 일을 했다고 뽐냈던 나.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서 여전히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글쓰기에 쏟는 마음이 커지면서, 내 마음의 집에 어떤 액자를 걸었던 것 같다.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크게 쓰인 현판 같은 것을. 그런데 이제는 그 초라한 장식품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작으니까. 더 공부하고, 더 아는 게 먼저라고. 퇴근하자마자 국내 극장의 접근성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 극장에 어떤 서비스가 있구나.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되었구나. 그 사이에 이런 일도 있었구나. 리소스를 모으기를 멈추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널조각을 다시 마음의 집에 걸기로. 반짝이는 프레임과 어여쁜 유리를 덧대서. 큰 망치와 굵은 못으로 벽을 뚫어. 내 글이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포기해버리면 안 되니까. 그때 진짜 나의 모든 힘을 잃게 될 테니까. 가끔은 힘이 풀려 주저앉고, 오래 쉬며 절망하겠지만. 속상함을 이기고 내 몫의 말을 힘주어하는 것 까지가 같이 사는 방법이 될 테니까. 그동안 포기하지 말자고. 내 목소리가 닿을 때까지 멈추지 말자고. 누군가를 환대하려면, 그에게 등을 돌려 내 집을 먼저 지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을 이겨내 보자고.


헐겁게 반짝거리는 커서와 적막한 공백을 빌려 이 일을 기록하는 것이 겸연스러운 사죄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몫을 해내려는 사람에게, 모욕과 질타에도 끝끝내 말하려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포옹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모두가 함께하는 극장을 꿈꾸는 사람에게 아래 자료 모음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멀리 퍼트려주기를 부탁한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오세형, 우리가 알아야 할 장애 예술", 배경희, <더 뮤지컬> 2019년 4월호 게재 기사: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4114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 - 극장 시설 접근성 점검 워크숍 기록집", 0set 프로젝트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Vqu5K27nfnzzlGcLbRPLezsM-vNdrT2G?fbclid=IwAR3zVkRmflqVQ1Ow_1ukRU0fPDIoqL2ydh44FesJay5pfiPPWll0f4rmH2M


"극장 내 휠체어석은 왜 맨 뒤에 있나요", 정위지, <<한겨레 >> 2022년 4월 6일 자 칼럼: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378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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