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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Sep 26. 2022

사람다운 것, 공연다운 것

act 1 scene 3

하우스어셔에게 주어지는 일들 중, 제일 가혹한 일은 지연 입장 안내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장 다양한 사연을 만나는 시간인 데다가 컴플레인의 발생 빈도가 아주 높은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하기를 두려워했던 업무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언성을 높이는 관객이 있었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점점 늘어났다. 내 선에서 일이 끝나지 못해 상급자를 부르는 일이 잦았다. 지연 입장 안내를 할 때면, 내 잘못도 시스템의 과실도 아니지만 언제나 죄책감이 들었다.


공연은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고, 감정을 가진 인간이 기계를 조작해 만들어낸다. 피가 도는 손이 직접 하는 일은 고유의 맛이 있다. 그건 찬란하지만 예민한 것이어서, 부서지지 않도록 도닥여야 한다.


지연 입장 제도는 무대가 가진 매력을 지키기 위한 방어다. 우선 공연이 한 번 시작되면, 객석 출입이 통제된다. 10초를 늦었든 10분을 늦었던 별 수 없다. 공연팀이 정한 타이밍에만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 늦게 입장하면 마음에 드는 자리에도 앉을 수 없게 된다. 문부터 좌석까지의 동선이 최소인 자리에 앉아야 한다.


지연 입장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은 공연마다 다르다. 음악이 함께하는 뮤지컬의 경우, 지연 입장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노래 타이밍에 맞춰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함께했던 2막짜리 뮤지컬은 공연을 통틀어 총 4번의 지연 입장 기회가 있었다. 공연 시작 5분 후, 10분 후, 15분 후 등 입장 허용이 잦아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연극은 기준이 조금 더 빡빡하다. 보통 장과 장 사이의 암전 사이에만 들어갈 수 있다. 암전은 짧게 지속되기 때문에, 연극의 지연 입장은 어두운 객석에서 좌석을 찾는 사람도 돕는 나도 긴장하게 만든다.


지연 입장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가 없는 관객을 마주할 때 긴장이 되었다. 1-2분 늦어 10분 이상의 공연을 놓쳐야 한다는 사실에 쉽게 순응하기 힘들다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 예매 시 관련 조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거나, 공연을 온전히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환부를 요구한다. 아주 적은 경우지만 고성과 욕설로 안내원을 위협하거나, 경찰의 출동이 필요할 만큼의 폭력을 쓰기도 한다. 화를 내며 입장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티켓을 갈기갈기 찢어 안내원의 안면에 뿌리는 일도 없지는 않다.


관객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내 마음도 상한다.


읽지 못했다는 공지는 예매 창 상단에 늘 떠있다. 하우스어셔에 대한 협박과 모욕은 사법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다. 나도 지연 위기에 놓인 적이 몇 번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장 하나를 통째로 놓치는 슬픔, 나도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연 입장 안내를 할 때는 늘 조심스럽다. 속상함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먼저로 둔다. 하지만 과격한 분노나 역정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다짐은 몇 없다. 관객의 잘못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또 공연을 공연답게 하는 지점에 대해 사고한다.


어쩌면 두 꼭짓점은 같은 위치에 있다. 모두 사람을 중심에 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약속된 시간에 도착한 공연팀과 관객을 존중하는 일, 실수를 인정하되 여전히 따돌리지 않는 일, 우리 모두에게 마음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일, 그래서 모두를 따뜻하게 생각하는 일. 이것이 우리가 서로를 믿고, 한날한시의 약속을 떠받드는 이유가 아니었던가.


내가 일했던 극장을 찾는다. 티켓부스와 객석 문 앞에 작은 푯말이 붙었다. 하우스어셔에 대한 공격은 법에 위반되는 사항이라고. 그건 위협당안 동료가 많았다는 증거이자, 어떤 사람들이 공연과 사람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인격들이 많았다는 거고. 푯말이 붙은 후로 슬픈 일들은 사라졌을까?


나는 여전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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