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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Sep 20. 2022

이번 정류장은 마로니에 공원

act 1 scene 1

출근하는 길에는 기도가 절로 났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발원은 시작됐다. 마로니에 공원 정류장에 닿는 데는 30분이 걸리고, 나는 이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빌어보았다. 오늘도 별일이 없게 해 달라고. 모두가 탈 없이 공연을 보고 극장을 떠나게 해 달라고. 또 이렇게 기도한 날도 있었다. 오늘은 공연이 정시에 끝나 일찍 집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라다보면, 대학로의 관문 마로니에 공원 정류장을 만났다. 여기서부터 극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작은 극장이 많은 대학로에서 일했다. 짧게나마 멋진 건물과 훌륭한 화장실, 그럴듯한 휴게실이 있는 큰 극장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대학로로 돌아왔다. 어쩐지 여기에서 조금 더 살아있는 느낌이었으니까. 그곳 근처에는 마로니에 공원을 이길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도 큰 몫을 했다. 남산공원이나 석촌호수, 한강진의 번화가는 특별했지만 충분히 애달프지 않았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나 정동길은 아름다웠지만 넘치게 사랑스럽지 않았다. 신당동 떡볶이 거리는 달콤하고 또 매콤했으나 은근하지 못했고.


마로니에 공원은 웅성거리다가도 고요했으며, 사근사근하다가도 알싸했다. 그래서 마로니에 공원이 좋았다. 나는 지금도 마로니에 공원을 좋아한다.


극장으로 가려면 한 정거장 뒤에 내려야 덜 걷지만, 공원을 가로지르는 순간이 좋아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 더 걷기를 선택했다.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찬 대학로에서 광장의 존재는 귀했다. 공원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밟을만한 근처 건물도 없어서 그 존재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주말에는 늘 공연이 두 번 연거푸 있었는데, 두 공연 사이에 짬이 나면 먹을 것을 가지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갔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색소가 살아나기를 바라면서. 공원에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는 날에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끌어안은 것 같았다.


나와 함께 일했던 한 사람은 마로니에 공원을 싫어했다. 그곳에서 커다란 벌레를 만난 일이 있어서다. 언니는 늘 빙 둘러 지하철역으로 갔다. 언니에게 마로니에 공원은 없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덜 여문 노래를 부르고, 여름에는 덥지만 겨울에는 추운, 그냥 그런 공터였을 거다. 그만치 좋은 부지에 창이 넓은 찻집을 지었으면 누군가에겐 더 좋았겠지. 그곳에 회벽이 생긴다면 나는 땅을 치고 울었을 테지만. 공간이 제 이름을 찾는 것은, 그를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다.


여유도 잠시, 늦지 않게 극장으로 향해야 했다. 보통 하우스어셔는 공연 1시간 30분 전에 출근한다. 평일에는 보통 8시에 공연이 시작되니, 6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 셈이다. 습관처럼 들르는 커피집에서 차가운 카페인을 사 내려갔다. 이마저도 공연 중반 즈음에는 효험이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옷을 갖춰 입고 무전기를 알맞게 착용하면 브리핑 준비도 끝났다.


브리핑을 기다릴 때면 극장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은 이곳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품을 때에야 극장이 된다. 아무도 없는 극장은 참 작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만 빙 둘러서도 꼭 끝일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집의 크기를 키우는 것은 마음의 몫일 테다. 로비가 열리고 매표소가 창을 올려야 기운이 살아났다. 설렘과 기대로 오늘을 마주한 사람들이 넘치는 그 순간에야.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관객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지, 필요를 메꾸기 위해 내가 가동할 수 있는 권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기쁨을 받아쳐야 한다. 기대감을 흡수하는 일이 도리어 더 힘들다. 이 공간의 의미는 나로부터 태어나는 것도, 나를 끝으로 소멸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극장이 극장다울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움직이면 된다는 사실을 들이마실 때 이 공간을 사랑하는 일이 조금 쉬워졌다. 햇살을 만끽하며 야외무대를 가로지르고, 쿠터분한 냄새가 나는 가로수 밑을 지나야 마로니에 공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다음 할 일은 객석 정리였다. 자리를 들추면서 관객이 들어와도 좋을지 확인해야 한다. 객석은 늘 어두워서 다치기 쉽고,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기 쉽지 않다. 덕분에 객석 정리는 늘 긴장이 뒤따랐다. 객석 문제로 공연 시작이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객석은 잠이  정도로 조용했다.    없는 환경에, 냉기와 온기가 적절히 나오니 이유가 충분하다. 웅성대는 소리를 뒤로 하고 객석에 들어가면 시간의 문에 손을  느낌이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답지 않은 공간을 여전히 객석이라 부르며 마음에 두기로 했다. 객석 문이 열리면 사라질 순간의 것이니  조용함을 즐기기로  것이다. 극장의   복판에서, 마음 집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이었다.  


현상의 양면성을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마음의 몫이었다. 어떤 때는 나를 울리는 일이 일어나지만, 오늘은 떠가는 공기마저 의연하다. 빨강과 파랑, 켜짐과 꺼짐, 가로지름과 멈춰섬이 오가는 공간을 모두어 사랑하는 일. 두 곳에 덤벙대는 마음을 이해하는 일. 또 누군가의 사랑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


마음을 다지면, 이제 객석 문을 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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