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홀로 두고 오던 길
꽃잎이 눈처럼 내렸습니다
하늘은 시리게 파랗고
세상은 아프게 밝았습니다
내게 빛이었던 당신이 떠났는데
여전히 반짝이는 세상이
야속하게 눈부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꽃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고
수줍게 웃던 당신
외롭게 울던 당신
내가 아는 당신은 고작 이것뿐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고
먹는 거 기는 거 걷는 거
엉덩이를 닦는 것까지
가르쳐야 한 인간 되는 줄을
나는 몰랐어요
당신이 나를 한 인간 되게 한 줄을
나는 몰랐어요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도 나는 몰랐어요
내 세상의 시작은
당신이었기에
당신이 떠난 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게 무언지
나는 미처 몰랐어요
아파하며 떠난 건 당신인데
나는 버려진 아이처럼
세상에 내동댕이 쳐진 듯
한참을 앓아야 했습니다
멍은 사라졌건만
어쩌다 꿈에라도 당신이 오시면
빛 없이도 아리게 환한 세상을
다시 열고 싶지 않아
좀처럼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기일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그 익숙함은 너무나 당연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버렸던 나의 엄마.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를 보며,
미안하고 그리워서 얼마나 울었던지요.
이제와 돌이켜보면 나는
엄마에 대해서도
엄마가 있는 세상에 대해서도
엄마가 없는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습니다.
백합꽃을 좋아하던 그녀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