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력자 3
띠링
핸드폰을 확인하니, 댓글이 달렸다는 메시지다. 정말 오랜만에 뜬 알림에 아무 생각 없이 오랜만에 내 SNS에 들어가 댓글을 확인해 본다. 이번에도 비밀 댓글로 온 글이다.
‘혹시 이 글.. 사실인가요? 저도 비슷한 능력이 있긴 한데,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거라서…. 세상에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네요.’
약간의 고민 끝에, 댓글이 진실이건 아니건 답변을 하기로 결심한다.
아이디는 ‘투명피부’.
피부를 아이디로 쓴 것을 보니 아마도 여성일 것 같은, 게다가 투명하다는 아이디에서 왠지 젊은 여자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래. 난 속물이다.)
‘네. 사실이네요. 발현되기 위해서는 너무 황당한 행동을 해야만 하지만, 아쉽게도(?) 사실입니다. 첨엔 좋았는데, 몇 개월 지나니 별로 쓸데가 없는 이 능력에 회의가 생기네요. ㅎㅎ, 투명피부님은 어떤 능력을?’
10여분 뒤 알림 메시지가 뜬다.
‘음.. 저는 잠시 투명인간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10초밖에 지속이 되지 않아서,,, 저 역시 이 능력을 어디에 써먹을 수가 없네요.’
응? 투명인간?
그래서 아이디가 투명피부인 것인가?
확실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투명인간이라면..
이건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아무리 10초라고 해도, 항문에 힘을 주고 10m 앞으로 순식간에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멋지고 사용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글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능력이 발현되기 전에는 이런 글들을 쓰는 사람을 당연히 미친놈 취급을 했겠지만, 능력이 발현된 이후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이디로 인해 머릿속에 잘못 박힌 선입관이 이 사람이 젊은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게끔 만든다.
‘혹시, 그 능력을 발현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전.. SNS를 통해 말씀드렸듯이, 민망한 행동을 해야 해서..’
‘음.. 저도 그렇긴 한데, 말씀드리기는 좀 그래요.
사실,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B밀님 글을 보고 진정성이 느껴져서.. 혹시 사실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저 역시,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고, 그렇다고 진짜로 이야기를 했다가는 어떤 불이익이 생길 것도 같아서.. 그냥 진실인 듯, 아닌 듯, 소설인 듯, 아닌 듯, SNS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를 외치듯 글을 써 봤네요. 과거 같으면 비슷한 능력이 있다고 댓글 주시면 미친 사람 취급을 했을 텐데, 제가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되다 보니, 그냥 흘려 넘길 수가 없게 되네요.’
그렇게 나는 ‘투명피부’와 SNS 비밀 댓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투명피부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절대로 지어낼 수 없는,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경험들과 감정들이 있는데, 그 부분을 ‘투명피부’도 느꼈다는 것에서 더더욱 진실임을 믿게 되었던 것 같다.
단지, ‘투명피부’는 초능력 발현 행동에 대해 물을 때마다 말을 돌리며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내 초능력 발현 행동에 대해 SNS로 글을 올린 것에 대한 약간의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에 큰 약점을 가지고 있듯이, 내 약점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2-3일간 ‘투명피부’와 SNS를 통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예전에 나에게 댓글을 주었던 ‘코발튀’라는 아이디의 인물이 생각이 났다.
‘투명피부’에게는 능력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공감을 하였지만, ‘코발튀’에게는 발현 방법만 듣고 미친놈 취급을 하며 답변을 안 해 주었던 것이 맘 한구석에 찜찜함으로 남는 기분이 든다.
‘투명피부’에게 ‘코발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그녀(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여자의 느낌이 강하다.)는 ‘코발튀’에게 다시 한번 연락을 해 볼 것을 권유한다. 나 역시, 이제는 ‘코발튀’도 그냥 미친놈이 아닌, 정말 능력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용기를 내어 ‘코발튀’에게 글을 써 보낸다.
몇 개월 만에 답글을 줘서 미안한데, 그때는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믿을 수도 없었고, 두려움도 있어서 답변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글을 보낸다.. 대충 이런 내용의 장문을 적어 보냈다.
‘코발튀’에게서는 바로 댓글이 왔다.
‘이해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ㅎㅎ 감사합니다. 이후 몇 개월이 흘렀네요. 며칠 전, 우연히 코발튀님 말고 또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진 분이 SNS를 보시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분에게서 진실성이 느껴지고.. 세상에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저 말고도 두 분이나 더 계신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난 ‘투명피부’와 ‘코발튀’, 두 사람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두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이 사람들과 만나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하자, 처음에는 모두 약간씩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할 수도 없으니 아무리 SNS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어느 정도 쌓았다고는 해도 여전히 신뢰성에 의심이 갈 수도 있고, 혹시라도 영화에서처럼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자신들을 납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항문에 힘을 주면 10m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동이 굳이 정부기관까지 나설 일인가..라는 생각을 한 후, SNS에 글을 올렸던 것 같다.
모두의 마음을 불안하지 않게 하고, 나 역시 내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토요일 저녁 반포 한강공원에서 만날 것을 제안한다.
토요일 저녁의 한강공원은 사람들도 많아 혹시라도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도 주변에 많을 것이고, 탁 틔인 공간에서 누군가 나쁜 행동은 쉽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투명피부’와 ‘코발튀’는 나로 인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고, 나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두 사람은 궁금증 해소를 위해서라도 만나는 것에 동의를 한다.
금주 토요일 7시.
반포 한강 공원. 세빛 둥둥섬과 잠수 대교 사이.
서로의 연락처는 안전을 위해 주고받지 않고, SNS를 통해 온 것을 알릴 것.
도착과 동시에 본인들의 인상착의에 대해 알려주어, 서로를 확인할 수 있게 할 것.
일주일 간 설렘과 두려움, 떨림 등의 복잡한 감정을 안고 지내다, 토요일 오후 7시. 반포 한강 공원에 도착한다.
5분 정도 먼저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며 두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나 살펴본다.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왠지 한눈에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살펴보았으나, 아무리 둘러봐도 모르겠다. 그냥 핸드폰의 SNS를 통해 내 인상착의를 알려 준다.
“저.. 저기 혹시, B밀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본다.
“코발튀님?”
나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이다.
머릿속으로 그려 본 모습은 큰 키에 마른 몸을 가진 30대 중반에서 40대 사이의 남자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젊고, 크지 않고, 마르지 않다. 뭐 하나 내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다. 절대 주변을 둘러봐서 찾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반갑습니다. 아.. 생각보다 되게 젊으시네요.”
“B밀님도 생각보다 젊어 보이세요. B밀님은 SNS 글을 통해 봐서인지, 나이도 좀 많으시고, 중후한 느낌일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아… SNS..
생각해보니 난 SNS를 통해 나의 많은 정보를 상대방들에게 노출을 한 상태이다. 왠지 나만 벌거벗겨진 느낌이 든다.
약간의 어색함이 흐르고, 쓸데없는 날씨 이야기와 한강 공원에 사람이 많다는 둥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B밀님? 코발튀님?”
“투명피부님?”
예쓰!
‘투명피부’는 내가 생각한 것과 유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깨끗한 외모. 미인이다..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누가 봐도 호감을 살 서글서글한 외모에 웃는 상이다.
소개팅을 하러 나온 것도 아닌데, 평소에는 말도 못 걸어볼 젊은 여자와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좋은 것도 잠시 뿐. 갑자기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 중년의 남자가 끼여있다는 어색함을 나 혼자 느끼기 시작한다.
아.. 우리가 만나기로 한 건 동호회 모임이 아니지.
다시금 정신을 추스른다.
“여기 이렇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좀 그런 것 같고, 저쪽에 가면 편의점이 있는데, 거기서 캔커피라도 하나 사서 잔디밭에 가서 앉아 이야기 좀 할까요?”
내 제안에 둘 다 좋다고 한다.
우려했던 정부기관이라던가, 보이지 않는 세력이라던가.. 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만나기 전의 걱정과는 달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것을 느끼고 나서는, 굳이 교통편도 힘든 한강까지 왔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교통도 편리한 좋은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그렇게 셋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사고, 공원에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돗자리도 하나 구입을 하여, 한강이 잘 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깔고 동그랗게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