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가족 26 - 음식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와이프는

먹는 것을 안 좋아한다.


본인의 말을 빌자면,

세상에서 요리하는 게 가장 싫고,

맛집이라는 곳을 왜 가서 줄을 서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그냥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음식이 와.. 맛있다.. 하며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가는 아이들에게 해 주는 아침식사는

딱 2가지이다.


시리얼 또는 간장계란비빔밥.


애들이 밥을 잘 안 먹고,

또래보다 작아

매일 밥을 안 먹는다고 화를 내지만,

애들은 “뭐가 있어야 먹지?”라고 반문을 하곤 한다.


나 역시 공감이다.




와이프와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몇 번 언쟁을 하곤 했지만,

그건 단순히 의견 차이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


십 수년 동안

진짜 심각하게 내가 와이프에게

폭발한 것은 3~4번 정도인데

모두 ‘음식’과 관련된 일이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주중이야

내가 밖에서 먹고 들어오니 이슈가 없었지만,

주말이 되면

문제가 발생하곤 했는데,


바로..

삼시 세 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은 시리얼 또는 간장계란볶음밥.

점심은 피자, 치킨, 중국집 중 택일하여 배달.

저녁은 8-9시까지 안 먹다가


“모.. 먹어야 하나? 나는 배가 안 고픈데,

애들 뭐 먹이긴 해야 할 것 같고… ”


똑같은 레퍼토리이다.


본인은 배가 안 고프고,

아이들은 먹여야 할 것 같고,

고려대상에 나는 없고.


보통은

그냥 그냥 넘어가지만,

2~3년에 한 번 꼴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라는 배고픔이

밀려오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도 본인은 배가 안 고프다며

식사 준비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와이프를 볼 때,

폭발을 했던 것 같다.


“당신 배 안 고픈 거 알겠어!

근데 그건 당신이고,

다른 사람들은 배고파!


애들도 제때 먹여야 클 거고!

내가 밥을 하라고 해?

요리를 하라고 해?


가정주부면 식사 때가 되면

최소한 어디 배달음식이라도 시켜서

음식은 내놔야지!


점심 12시에 먹었는데,

밤 9시까지

본인 배 안 고프다고

아무 생각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아이들 핑계를 대지만,

속으론 ‘이러다 아사하겠다..’는 느낌을 받으며

화를 냈던 것 같다.

TV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고 하는데..

딱 내가 그런 느낌을 느꼈을 때,

참을 수 없는 화가 났었다.

그때의 와이프는?


‘내가 죽일 년이지..’를 시전 한다.


그리고..

아사 상태의 나는 더 싸울 기력도 없다.




육아휴직 기간,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긍정의 마음으로 충만했던 시기.


더 이상 먹는 것으로 싸울 일은 없다.


요리하기가 취미가 된 나는

학교 가는 아이들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점심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

어딘가에서 때우고 올 수 있고,

저녁은 또 다양한 요리 실력을 뽐내며

만들어 손수 대접하기에,

반찬의 가지 수도 확연히 늘어난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배가 고프면

내가 시켜 먹으면 될 것을,

왜 배달 음식이라도 안 내놓냐고

와이프에게 불같이 화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P.S. 와이프도 나의 육아휴직 기간,

부모님 댁에 요리를 해 가며, 실력이 엄청 늘었다.


결혼한 지 십 수년이 지났는데,

기본 반찬 하나 만들면서

막 요리에 흥미를 가진 나에게

레시피를 물어본다는 게 어이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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