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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Nov 20. 2023

고양이의 시간에

그날 아침 괘종시계의 바늘을 돌리고 있는 고양이 미루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녀석은 한 손으로 시계 기둥을 붙들고 서서 다른 한 손으로 분침을 막 돌리려던 참이었다. 우리는 잠시 얼음이 되어 마주 보고 있다가 각자 아무렇지 않은 척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좌우로 움직여야 할 시계추가 앞뒤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날부터 짐작은 하고 있던 일이었다.

누군가가 이 방의 시간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녀석은 시간과 양자중력의 관계와 우주 물리학적 시간의 변동성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시계추의 움직이는 방향은 이해하지 못하는지 어떤 날은 좌우로 어떤 날은 앞뒤로 흔들리게 해 놓았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고도에서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 그러니까 미루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땅에 발을 딛고 산다. 하루 삼 분의 이를 누워서 뒹굴거리는 나는 대부분의 인간들보다 더 낮은 곳에 사는 종족이다. 그에 반해 고양이 미루는 이 방의 가장 높은 곳에 산다. 냉장고나 옷장 위 같이 천정과 맞닿은 지점이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위해서는 그 정도 높이로는 어림없다고? 그건 미루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고양이가 잠깐씩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면 이해할 것이다. 열 평도 안 되는 방 안에서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던 녀석이 느닷없이 방 한가운데로 나타나는 일 말이다. E는 mc² 인 데다가 hf와도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그 시간 동안 높은 곳을 좋아하는 미루가 히말라야 정상에 있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주장의 근거를 댈 수도 있다. 카를로 로벨리라는 우주론의 대가는 우주의 기본 요소에 포함되지 않는 예외 물질로 고양이를 들었다. 그는 고양이를 가리켜 지구 곳곳에 불쑥 등장하는 복잡한 어떤 것으로 규정한다. 12층에서 떨어지고도 무사한 고양이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굳이 12층이 아니라도 냉장고 위에서 뛰어내리는 고양이가 몸을 뒤트는 것을 본다면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들이 편의상 유연하다고 표현하는 녀석의 몸트림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블랙홀 이론이나 다중 우주 이론에 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녀석은 낙하의 순간에 다른 차원으로의 순간 이동을 통해 몸이 받을 충격파를 최소화하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고양이 미루가 시곗바늘을 옮기던 때로 돌아가 보자. 나는 평소대로라면 두 시간 뒤에나 일어나야 했다. 암묵적인 약속에 의해 평화롭게 공존하던 루틴을 깬 나의 반칙으로 미루와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 드러났고, 나는 녀석이 아침마다 시곗바늘을 돌려 우리의 시차를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미루는 자신의 느린 시간에 맞춰 내 시계를 매일 조금씩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시공간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어쩐지 세상이 나를 놔둔 채로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더라니. 나는 매일 밤 그들을 향해 "나는 틀렸어, 먼저 가!"라고 비장하게 외치며 가슴을 움켜쥐고 이불 위로 쓰러진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그들과 다른 저녁을 그들보다 늦게 먹는다. 볕이 드는 창 아래 길게 누워 천천히 깜빡이는 미루의 파란 눈 속에서 회중시계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그동안은 왜 몰랐단 말인가. 


 나는 방 안에 갇혀있나 보다. 그 방 안에는 고양이 미루와 녀석이 지배하는 시간이 같이 있다. 나는 미루의 옆에 앉아서 통창을 통해 매일 나보다 t'만큼 앞선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멀어진 사람들이다. 이봐 휴먼, 느긋하라구. 미루가 파란 눈 속의 회중시계를 흔들면서 말한다. 고양이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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