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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Dec 11. 2023

1.5 룸 타디스

 공간 얘기가 나온 김에 그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에이미와 로리가 갇힌 윈터 키 호텔만큼 극단적인 고립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영국 시리즈물인 닥터 후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에 관한 얘기다. 동상의 형상을 한 우는 천사로 불리는 종족은 인간의 시간 에너지를 먹이로 삼는다. 그 시간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 인간을 과거로 던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양자 방어 체계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뭐라고?

 

 더 나아가 양식을 지속적으로 얻어내기 위해 맨해튼을 점령하고 한 호텔에 인간들을 가둔다. 이 감옥이 윈터 키 호텔이다. 말하자면 우는 천사의 식량 농장인 셈이다. 이들이 인간의 시간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다. 다만 납치된 로리가 그 안에서 늙어 죽는 장면으로 추측건대 죽을 때까지 착취당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에이미는 납치된 남편 로리를 따라가 함께 갇히게 된다. 탈출하려면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뭐라고? 


 그러나 그렇게 되면 도시가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포기하고 두 사람은 호텔에 남는다. 에이미로서는 자발적 쿼런틴인 셈이다. 그들은 명찰이 붙은 방 안에 갇혀 산다. 침대가 놓인 작은 방의 창으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창 안팎의 세상은 같은 세계가 아니다. 에이미와 로리의 방은 외부와 연결된 것 같지만 철저하게 고립된 착취의 장소일 뿐이다. 착취의 대상은 다름 아닌 그들의 시간이다. 창 밖의 사람들의 일상은 어쩌면 외계 종족이 만들어 낸 허구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갇힌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자발적 격리다. 에이미는 여러 번의 시간의 모순을 거쳐 미래의 닥터 후에게 소식을 전한다. 그곳에서 나름 행복했노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믿었다. 비록 사육당하며 시간을 도둑맞고 있었으나 사랑하는 남편 로리와 함께 에이미는 행복했구나.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남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인사일 것이 뻔하지 않은가. 


 닥터 후 얘기가 나온 김에 그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사실 내 1.5 룸 윈터 키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님을 밝힌다. 고양이 미루의 1.5 룸 타디스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게 맞다. 타임로드가 타고 다니는 경찰박스 같기도 하고 전화박스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카멜레온 서킷이 달린 경찰전화박스라고 하는. 뭐라고?


 다 됐고 이 탈 것은 겉에서는 전화부스만 해 보이지만 내부는 사실상 무한할 만큼 크다고 한다. 거기다 시공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다. 내 윈터 키를 녀석이 타디스처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깨달았다. 그녀 에이미, 아멜리아 폰드는 행복했을 리가 없다. 그녀는 무한한 타디스를 타고 광활한 시공을 누비던 타임로드의 컴패니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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