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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Dec 25. 2023

방구들 이야기

 속담에 관해서 좀 더 얘기를 해보고 싶다. 속담은 반드시 비유적인 의미를 내재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이 오는 날 거지가 청계천에서 빨래를 한다'는 표현은 눈이 오면 오히려 날은 춥지 않다는 사실의 비유적 표현일 뿐 내재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같은 비유라도 사실적이냐 내재된 의미가 따로 있느냐에 따라 속담이 되기도 하고 단순한 표현법에 그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속담이 갖는 내재된 의미를 화용론적 함축의미라고 한단다. 


 고양이에 관한 속담을 예로 들자면 중국에는 '고양이처럼 살기'라는 속담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최상의 상팔자는 고양이인 것이다. 미루를 보고 있노라면 내 생각이 딱 그렇다. 화용론적 함축의미를 고심할 것도 없다. 내재된 의미가 분명한 속담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속담은 의외로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한다. 이 속담만큼 중의적인 것도 드물다고 나는 미루를 보면서 생각한다. 언뜻 보면 고양이 손을 빌릴 만큼 바쁘다는 의미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고양이의 손만큼 세상 무익한 것은 또 없다. 바쁠 때 정말 빌리고 싶지 않은 손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고민 없이 즉시로 미루 녀석의 손을 꼽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 그렇게 말 안 듣고 불손하고 무시하는 손이 또 있을까. 게다가 솜방망이다. 어쩌다 활짝 펴도 오래 못 간다. 그러니까 고양이의 손을 빌리는 상황이라는 것은 정말로 도움을 청할 데가 하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니 속담이 맞다.


 '남의 집 고양이'라는 속담은 '꿔다 논 보릿자루'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실제로 '빌려다 논 고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미루 녀석으로 견주어 보건대 이 속담은 고양이 속성에 대한 접근부터가 잘못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한다. 남의 고양이라는 표현부터가 그렇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소유되지 않는다. 고양이는 다 남의 고양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녀석들은 제 집에서도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소 닭 보듯 산다. 혹은 나를 빌려다 논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속성이야 어찌 됐든 함축적 의미로 본다면 속담이 분명하다.


 내가 모르겠는 것은 앞서 말한 사실적 표현법도 내재된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예를 들어서 '대한이가 소한이네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는다'는 표현은 소한이 대한보다 오히려 더 춥다는 사실적 표현일 뿐 내재된 다른 함축적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방구들이 사람덕 보려고 한다'는 표현도 그렇다. 어릴 때 구들이 차가우면 할머니가 노상하던 말이다. 그냥 바닥이 차갑다는 소리다. 함축적 의미라 봤자 애미야 불 좀 더 지펴라 정도 될까. 국문학자가 말하는 화용론적 함축의미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도 나는 속담도 아니고 내재된 의미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의 이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사회에 나가보겠다고 용을 쓰던 내 청년의 때였다. 청년에게 세상은 춥고 암담했으며 말도 안 되게 높고 견고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줬어도 좋으련만 이제 네 차례라는 듯 내 덕을 볼 준비를 마친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 시절 할머니가 그 표현을 쓸 때마다 혹시 내 얘기를 하나싶어 눈치가 보였다.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쏟아지는 질문에 사람덕이나 보려는 방구들이 된 것마냥 염치가 없었다. 졸업도 하기 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불을 때 줬으니 금방 달궈지라고 안달해도 구들이 데워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때  아직 춥고 여전히 온기가 그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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