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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Jan 22. 2024

우주 고양이, 그리고 지도

 세계지도가 고양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우리 나라 지도가 호랑이 형상을 한 것처럼 누군가의 주장이 그렇다. '그리기 나름'이라고는 하나 그렇다는데 굳이 반대할 만큼 영 억지는 아닌 형상이다. 구글에서는 고양이가 이미 유튜브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면서 구글 지도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벌써 구글 맵 스트릿뷰는 다 차지했고, 관계자에 의하면 고양이가 지도 제작을 이어받고 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수년 전에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홉스베이에 나타났다 24시간 만에 사라진 고양이 모양의 하이킹 코스 얘기다. 페이크에 의한 트랩스트릿에 불과했지만 누군가 꽤나 정성스럽게 디자인한 형상이었다고 한다. 한 사용자는 '목줄까지 하고 있는 잘 관리된 길고양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구글 고양이를 두고 누구는 크롭서클같은 우주 고양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누구나 장소를 추가할 수 있는 구글 기능 덕분에 유저인 고양이가 직접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하는데 두 주장 모두 매우 진지하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고양이와 같이 살다 보니 구글맵 사장이 고양이래도 나는 믿긴다.


 이 얘기를 왜 하냐 하면 내가 주문한 지도와 고양이 미루 때문이다. 지도를 펼칠 생각까지는 아니었으나 나는 뭐든 새 것을 받으면 일단 뜯어서 헌 번 쓴다. 일종의 침을 발라놓는 엄숙한 의식 같은 거다. 그런 의미로 바닥에 좍 펼쳤을 뿐인데 미루 녀석이 이렇게나 좋아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미루는 육대륙의 오지까지 구석구석에 고양이 족적을 남기고 돌아다녔다. 이 고양이가 그 우주 고양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쉽캣이라는 직업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럴 만 하기는 하다. 쉽캣은 고양이의 직업이다. 쥐잡이용으로 뱃사람에게 고용된, 말하자면 뱃고양이다. 그러나 쥐잡이란 그들의 직무가 그렇다는 것이고 실재로는 선원들의 말벗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크루였다고 한다.  고양이들은 배를 타고 대양을 누볐다. 이런 역할을 하는 '인간'도 있다. 지금도 국제법규에 따라 화물선에 12인 이하의 여객 손님을 받을 수 있다.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 승조원의 장기 선상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다 알고 타는 것이니 고양이 취급을 받는다고 기분 나쁠 것도 없다. 실상은 유료 승객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표가 없어서 못 탄단다.


 개라고 없지는 않다. 주디는 2차 대전 당시 함선에서 항공기 소리를 미리 듣고 조기 경보를 내리는 임무를 수행한 영국군 소속 개다. 그냥 개라고 하는 건 군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디가 속한 영국 해군이 일본군에게 잡힌 후에는 영국포로의 요청에 의해 공식적인 전쟁 포로로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주디의 정포로 명칭은 '81A 글로거 메단'이다. 생환   디킨 훈장을 받았으며 영국 포로 협회의 유일한 정식 개 회원으로 올라가 있다.


 그러니까 미루가 세계 지도를 보자마자 답지않게 미친 듯이 날뛴 이유가 있었다는 소리다. 녀석은 거의 하루는 지도 위에서 보냈다.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이 세계 지도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분명한 게, 대양을 잘도 피해서 대륙으로만  다녔다. 사실 지도는 찾아가기 위한 목적보다 무언가를 밝혀내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게놈 지도, 우주 지도, 가계 지도같이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를 말하는 것으로 영어로도 똑같이 map이라는 단어를 쓴다. 미루 녀석이 족적을 남기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지도 사용법 역시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치 대륙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양 녀석의 태도는 보물지도를 들여다보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사뭇 진지하다.


  지도에는 어떤 힘이 있다. 미 SF 시리즈의 고전 스타트랙 보이저편에서 캡틴 캐서린 제인웨이가 이끄는 USS 보이저호는 강제로 워프 되어 은하계의 반대 끝인 델타분면으로 떨어지고 만다. 지구가 속한 알파분면에서 7만 광년이나 떨어진 거리로 연합은 가본 적 조차 없다고 믿었던 곳이다(실제로는 아니었으나). 돌아가는 데는 최대 워프로 60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도가 없다는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기를 쓰고 묻고 짚어서  찾아가는 그 길이 나중에 지도가 되는 것이다. 최초의 지도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길을 안내해 주는 기능 이전에 탐구와 탐험과 탐색, 우리는 그 과정 역시 지도라고 부르기로 한 것 같다. 내가 지금 미루와 함께 들여다 보는 이 지도 또한 이전의 탐구와 탐험과 탐색이 주는 품고 있다. 그래서 지도를 사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중이다. 아무리 나라도 지도를 보고 있으면 이제 떠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우리 집 우주 고양이도 이미 여기 없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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