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은 보내야 하는가?
사교육은 영어유치원 즉 영유로 시작해서 의대 진학으로 마무리된다. 4세에 영유로 시작해서 초등학교까지 영어를 마무리하고, 중등부터는 수학 과학에 올인, 이후 영재고 과고 진학, 그리고 마침내 의대진학이 대치동 사교육의 정규 코스다. 수능에서 절대평가 과목으로 바뀐 영어는 최대한 초등 늦어도 중3까지는 마무리한다는 것이 공부깨나 시키는 엄마들의 로드맵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수능 비중이 높아진 수학, 국어, 그리고 과탐에 올인해서 의대 합격. 물론 정시로 의대합격하려면 수능은 거의 만점이어야한다.
따라서 영유는 대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 이후로 영유를 보내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그리고 수요에 맞게 많은 영어유치원들이 성업중이다. 애플트리, 폴리, 게이트, 씨게이트(게이트의 중국어버전) 등등 강남 서초 청담에서 유행하는 잘나가는 영어유치원들이다. 학비는 대략 180만 원 내외, 교재 등 기타 비용을 합하면 대략 월 200-250만 원 정도다.
실제 여러가지 유형의 영유가 있고, 영유를 보내는 부모님들 중에 반드시 영어에 올인하려고 보내는 경우가 모두는 아니다. 영유의 상당 부분은 어차피 유치원 보내야 하니까, 적절한 어린이 집이 없으니까, 그래서 학습보다는 탁아 내지 보육의 개념으로 보내는 부모님들도 많다. 그래서 영유가 반드시 잘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영어로 운영되는 유치원이다. 그런데 영어라는 포인트, 그리고 학습이라는 포인트가 과장되면서 마치 모든 영유가 영어 학습을 하는 엘리트 어학원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어학원절반 유치원 절반, 그래서 반반인 느낌이다.
대치동 영유하면 가장 아이콘적인 단어가 4세 고시, 7세 고시다. 4세 고시는 5세부터 다니는 영유를 가기 위한 입학 레벨테스트를 의미한다. 7세 고시는 영유를 마치고, 초등학교 대상 어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레벨테스트다.
10월 말 11월 초면 대치동은 4세 고시 7세 고시로 엄마들도 아이들도 바쁜 시절이다. 특히 빅 3 빅 5 빅 7로 불리는 좋은 어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레벨테스트를 잘 봐야 하고 그래서 레벨테스트를 위한 과외를 따로 받는 경우도 많다.
4세면 사실 만으로 두 살 또는 세 살 아이다. 엄청난 학습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강남 영유의 필수코스 중 하나인 4세 애플트리 5세 게이트를 가려면 험난한 입학 테스트를 치러야 한다. 애플트리는 그래도 일반 놀이식 더하기 학습식 유치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플트리에서 게이트로 진학하는 과정은 차원이 다르다. 게이트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영재테스트를 봐서 상위 5% 안에 들어야 면접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개인면접 또는 영어 수업 레벨테스트를 거쳐 합격애햐 게이트에 다닐 수 있다. 그리고 이 입학시험은 세 번으로 응시가 제한된다. 고시느낌이다. 그래서 엄마들이 게이트에 보내려고 4세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과외를 받고 그런다. 그래서 4세 고시라는 말이 생겼다. 만 두 살 세 살 아이가 영재 테스트를 봐야 하고, 영어 참여수업 테스트를 거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님에도 영유 최상단에 위치한 게이트에 입학하려는 엄마들의 열의는 뜨겁다.
영유에서 미국 교과서나 원서로 수업을 시작한 아이들은 말하고 듣고 읽는 역량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다. 이후 다시 빅 3 초등 어학원을 향한 7세 고시에 도전, 합격하면 대략 초 3학년까지 미국 교과서를 마무리한다. 보통 대치동 빅3는 ILE, 피아이, 렉스김을 의미하고, 여기에 에디센, 아이엔을 더해 빅5라고한다. 빅3,5,7은 기준마다 조금씩 다르긴하지만 ILE의 공부양은 어마무시하다. 미국학생 기준 초등 고학년 교과서로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초등 3학년이면 어지간한 미국 초등 교과서 진도는 마무리된다. 이후 초고학년에는 한국식 문법 독해 수업으로 수능 선행을 하게 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고1 영어를 마스터한다거나, 중1 때 수능영어를 완전히 준비한다거나, 늦어도 중3 때 수능 영어는 끝낸다는 대치동 영어 로드맵을 완성하게 된다.
교육에 대해서 나는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본인 적성과 니즈에 맞춰 본인에게 맞는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대를 가기 위해 영어 선행을 빨리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그 결정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수능을 위해서 영유를 보내고 4세 고시를 보고, 7세 고시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내 아이가 영어에 친숙하고, 영어를 편하게 쓰게 한다는 의미에서 영유를 보내는 것은 적극 찬성이다. 그러나 영유가 수능을 위한 전단계라면 그 효율은 낮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수능은 어법과 독해를 테스트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학생들 중에 말하기는 자연스럽지만 어법이나, 문장 쓰기, 독해에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적지 않다. 스피킹이 곧 리딩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능을 위한 선행은 영유가 아니라 초3, 또는 초4 또는 초6부터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히려 초등학교까지는 문해력에 중점을 두는 것이 수능 자체만을 위해서는 더 좋은 전략으로 판단한다. 요즘 학교에 가면, 국어나 영어에서 읽고 추론하는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초등생이 미국 초등생 또는 중학생 수준의 영어 교과서를 읽기보다는 어린 때는 영어에 익숙해지는 정도만,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을 간다면 수능 준비는 영어에 익숙한 마음에 단어와 읽기를 늘려가는 그리고 필수적인 어법 공부를 추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초5학년 6학년 심지어 중학교 1학년도 좋겠다.
영어유치원은 그냥 유치원이다. 이런 느낌으로 보내고, 영어에 대한 결과, 또는 수능에 대한 대비, 그리고 이 길 끝이 의대합격이라는 강박관념은 아이나 학부모나 모두 없었으면 좋겠다. 굳이 어릴 때 영어를 학습해도 중간에 쉬는 기간이 생기면 많이 잊는다. 영어권 나라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우리 애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3년 다니더니 what's your name?에도 답을 못했다. 영어는 언어라서 쓰면 늘고 안 쓰면 잊힌다. 따라서 너무 어릴 때부터 영어에 대한 강박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덤으로 요즘 수능영어 그렇게 어렵지 않다. 3문제 정도 틀려도 1등급 받는데 크게 지장 없다. 우리 애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거나,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싶다면 영어유치원 적극 권장한다. 그러나 수능 봐서 의대가고싶다면 영어공부는 편하게 생각하자. 의대가서 원서보지만 그냥 단어 외우는 느낌이다. 영어는 영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