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밝음의 상징. 빛은 사물 인간 동물 벽 천장 바닥 나무 모든 것을 아우르며 밝힌다. 빛의 성질은 밝힘에 근본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밝힌다는 것은 굉장한 긍정어로 사용된다. 밝아지는 사람을 보고 인상이 좋다고 느낀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면 산이 보이고 건물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해가 더욱 떠오르면 가로등은 꺼진다. 더 이상 인공적으로 어떠한 것을 밝혀줄 필요가 없으므로. 해가 뜨고 주변이 밝아지면 하루는 새로이 시작된다. 새로운 시작. 고양감으로 인해 뚜렷한 의지가 부여된다.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사용자 나름이지만. 분명한 것은 빛은 밝고 밝음은 긍정이다. 고로 빛은 긍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빛이 들어오는 집엔 온기가 존재한다. 그래서 남향이 좋다고들 한다. 그렇게 되면 빛이 오랜 시간 동안 집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렇게 빛은 지금 존재들보다 오랜 시간 존재하며 사람에게 많은 이점을 주어주고 많은 혜택을 주었다.
달이 주는 빛은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빛은 빛이다. 쉼의 빛이고 고요의 빛. 하지만 강도가 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에 문명화되기 전엔 불을 이용해 빛을 얻었고 현시대엔 인공조명을 이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늦은 밤에도 빛을 갈구한다. 공산화된 북한이나 나라자체의 경제력이 없는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면 아마 빛이란 것이 없는 상태로 밤을 보내는 문명은 없다. 빛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고 있다. 불이 꺼지지 않는 밤. 책을 보기 위해 스탠드 조명을 켜고 영화를 보기 위해 티브이의 빛을 본다. 악을 행할 이들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부각할 빛을 도로에 빼곡히 진열하고 술집들은 늦은 밤에도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장사를 한다. 빛의 기본적 개념은 분명 악보다는 선. 거짓보다는 진실. 감추기보다는 드러냄에 있다.
빛의 속성 중 특이한 점이 있다. 빛으로 인해 아플 수 있다는 것. 신체적으론 여름을 생각해 보면 된다. 뙤약볕에 조금이라도 피부를 드러내면 작은 참새들이 작은 부리로 격하게 쪼아대듯 아프다. 신체적인 것뿐만이 아니고 마음의 빛이 춤도 다르지 않다. 빛은 무언가를 조명하는 데에 탁월한 역할을 하는 반면 밝혀지는 모든 부분이 그다지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어리석고 나약하기에 자신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갖기 어렵다. 누구나 거짓을 품고 있다. 거짓 없이 진실만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나 밝히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빛이 나를 뚫고 들어와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나만이 아는 비밀스럽고 축축하고 음침한 곳에 빛이 내려온다면 흠칫 놀라 몸을 웅크리고 피하고 감출 것이다. 빛은 진실성. 진실을 비추기에 아프고 아프기에 피한다. 그것이 빛의 속성 중 특이한 것이라고 본다.
진실되지 못한 삶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뉴스에 나오는 악인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비판하는 자신이 비슷한 일을 할 때에는 합리적이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을 안다는 것은 오히려 그 지점에서 떨어져 보아야 한다. 그러면 진실을 만날 수 있다. 공인이 잘못을 저질렀다. 돈이든 성적이든 윤리에 합하지 않은 잘못을 했다 치자. 그래서 비판과 비난을 가한다. 그와 동시에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 해온 모든 것이 기록되어 그것을 볼 수 있다면 누구도 위의 공인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수치심에 부끄러움에 숨고 싶은 마음에.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진실은 아프다. 빛을 비추면 진실은 더 조명된다. 누가 볼지 몰라 부리나케 빛을 돌려버릴 것이다. 거짓된 진실. 참담한 진실. 거북한 진실로 가득 찬 것이 인간의 삶이다.
빛. 밝음. 진실. 그런데 빛이 거짓을 만난다면 어떨까. 거짓에 온기가 부여된다면. 이성적인 그리고 논리적이라면 불가한 일이다. 거짓은 거짓이고 악은 악이다. 악을 행했다면 악을 행한 것이다. 거짓은 분명 거짓이지 그것을 참으로 돌릴 순 없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이성적이라고 해도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해도 개인적이다. 개인적인 논리와 이성은 주관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것은 국소적이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사람은 감정이다. 감정의 집합체. 감정의 이면은 시시 때 때로 변한다. 손바닥 뒤집듯 쉽지만 분명 손바닥과 손등은 다르다. 변할 수 있음에 환멸을 느끼거나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개인의 몫이다. 이성. 논리.
다시. 분명하게 인간은 감정의 덩어리다. 그러기에 나는 거짓 또한 온기를 가지고 거짓의 무거움과 지저분함 그리고 더러움이 일정 부분 벗겨질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반성 회개 참회 같은 것으로 불린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하게 손바닥을 뒤집 듯이 간단하면서 추악한 면이다. 손등을 손바닥으로 뒤집고 손바닥을 손등으로 뒤집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일 테니까. 왜 추악한가 하면 진실성에 결부되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성은 대게 무거운 것으로만 생각하니까. 그럼에도 빛이 도운다면 쉬워질 수 있다고 본다. 빛은 밝히고 아프지만 진실을 만들어주니까. 여기서 하나 걸리는 점은 그것을 돌릴 수 있는 용기이자 마음이 힘이 존재하는가 이다. 여기서부터는 또 이성과 논리,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국소적인 활동이다.
자. 빛을 비춰줄게. 이제 진실이 되어보렴. 은 타자의 생각이고. 빛이 들어와서 너무 뼈아프다.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어. 감출래. 가 거짓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 빛이 들어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지켜보고 반성하고 회개하며 참회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는 분명 용기다. 마음의 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문제. 혹은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 수도 있다. 설령 빛이 들어와도.
영화 캡틴 필립스의 필립스 선장은 큰 화물선의 선장이다. 소말리아의 어린 해적들에게 납치되지만 어린 해적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중 10대 후반정도의 어린 해적에게 필립스선장은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어린 해적 역시 그에 응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다. 필립스선장은 그에게 빛적인 존재로 도달한 것이다. 사람 역시 빛일 수 있다는 것. 필립스는 그를 구하기 위해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빛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했다. 아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보다 더 거대한 힘을 가진 보스에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고 사실 빛이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빛은 해와 조명에서 뿐만이 아닌 사람의 손길 혹은 언어 행동에서도 나올 수 있으니까. 미국 해군은 필립스선장을 구출하기 위해 인질극을 벌인 이들을 가차 없이 사살한다. 필립스 선장은 자신의 빛 때문인지 설령 온기를 불어준 아이의 미래의 빛이 스쳐간 것인지 절규한다. 절규.
빛은 어쩌면 아픈 속성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상은 힘들다. 빛이 빛인지 모를 수도 있고 빛을 내어준 누군가도 동일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빛을 내어준 빛을 비춰봐 준 사람은 알 것이다. 기대를 하지 않아도 상상한 만큼이나 혹은 기대감만큼 빛이 이용되지 못하고 어둠에 잠식당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를. 그래서 더욱 사회는 개인적으로 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빛은 중요하다. 빛은 긍정이자 진실이고 마주할 용기이자 변모할 기회니까.
빛은 분명 아프지만 아픈 것은 어떤 면에선 사람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빛. 사람의 빛. 마음의 빛.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