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동료들이 있다. 좋은 동료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나는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분명 축복이다. 좋은 동료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와 가깝다. 사람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마음이 어느 정도 맞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지는 것이지. 혹자는 좋은 동료를 만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은 동료가 되면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보통 타자는 자신의 거울이니까. 그럼에도 자신을 갉아먹지 않은 채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누군가와 톱니바퀴가 맞아 굴러가듯 맞는다는 것은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관계의 부분은 존재한다. 양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적은 편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게다가 사회에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복福받았다고 할 만하다.
좋은 동료란 무엇인가. 나는 좋은 동료란 서로의 눈빛 행동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으며 그것을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존재라 정의하겠다. 눈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심오하다. 눈빛이라는 것은 거시 적라기 보단 미시적 영역이다. 볼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미시적인 것은 사실 상상 같은 영역이니까. 눈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데부터 시작한다. 눈의 빛. 누군가의 눈에는 빛이 난다. 그리고 누군가의 눈은 썩은 동태눈 같다. 빛나는 눈과 빛나지 않는 눈의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눈의 빛을 품고 있는 자는 진실되다. 눈의 빛은 거짓을 담아내지 못한다. 눈이 빛을 잃는다면 맹인과도 같다. 눈의 빛을 담을 수 없다면 거짓을 담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눈을 보아야 한다. 사람을 볼 때 눈을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그릴 수 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미시적 영역이지만 경험칙으로 무형적 가치를 알 수 있다. 모두들 알 것이다. 사랑에 빠진 눈.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는 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눈. 집중한 눈. 자신감의 눈. 그 눈엔 분명하게 빛이 존재한다. 그 빛을 보다 보면 아름다운 보석을 보는 듯하다. 그와는 반대로 졸린 눈, 하기 싫은 것을 하는 눈, 지겨운 눈, 지루함의 눈, 분노의 눈, 거짓의 눈은 빛의 광채가 담기지 못한다. 보석이기에 빛나는 것이지 돌이라고 빛날 수는 없다. 거짓의 눈엔 돌이 담긴다. 무겁고 탁한 눈.
행동엔 선이 있다. 착할 선善도 될 수 있고 줄 선線일 수 있다. 착한 선의 행동은 배려가 담겨있다. 무거운 행동이 아닌 가벼운 몸놀림. 다른 생각이 깃들어 있지 않은 채 가벼움 몸놀림으로 행동할 수 있다. 눈의 빛과 연관된다. 보석같이 빛나는 눈은 진실을 담고 진실은 몸의 날개를 달아준다. 돌처럼 빛나지 않은 거짓의 눈은 돌을 담았기에 무겁고 무겁고 또 무겁다. 행동은 그만큼 무디고 처지고 낡아간다. 그런 선의 행동엔 부끄러움도 없다. 자신이 선이기에. 그런 무의식 중의 행동은 자신의 행동에 분명한 가치를 부여하고 행동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고 망설임이 없다. 착한 선이라는 것은 저울질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되며 생각의 무게를 더하지 않는다. 줄 선은 어떠한가. 동일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망설임이 없는 진실된 행동엔 유려한 선이 존재한다. 거짓된 생각이 깃들어있을 수 없기에 행동은 매끄러운 선을 유지한다. 매끄러운 선의 행동은 사람을 수려하게 만든다. 진실은 그런 힘을 지녔다. 진실의 빛이 담긴 눈은 빛나는 선을 가진 행동을 유발한다. 거짓의 행동은 굉장히 삐걱댄다. 불필요하고 무가치하다. 거짓의 생각이 깃은 몸은 기름칠이 수십 년 동안 되지 않은 기계와 같다. 소리가 매우 시끄럽다. 거슬리는 소리도 유발하고 괜한 생각을 만드는 행동을 하게 된다. 정말 불행한 것은 거짓을 담은 사람은 그것을 인식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거짓은 유독 진실보다 무겁기에 쉽게 날 수 없어 어느 누구에게나 거짓됨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 더욱더 가린다. 가리고 가린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 눈의 빛과 선의 행동이 모인 결과다. 진실의 힘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눈을 빛은 다른 사람에게 생명력을 부여한다. 선의 행동은 타인의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해 준다. 그 모든 것은 결국 타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헤아려주려는 것이다. 그런 동료를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라 얘기할 수 있지 어찌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회에 나와 수많은 동료들을 만났다. 수많은 눈을 보았고 수많은 행동을 보았다. 수많은 눈에서 진실된 빛과 거짓된 돌을 보았다. 수많은 행동에서 선의 모습을 보았고 기름칠되지 않은 기계들도 많이 보았다. 현재도 그렇다. 나의 동료들. 진실과 거짓은 공존한다. 빛과 어둠처럼. 칠흑같이 어둡던 묵은 밤을 지나 빛이 존재하면 어둠은 물러난다. 그럼에도 어딘가엔 어둠이 존재한다. 그리고 빛이 점점 기울어가면 어둠은 다시 많은 것을 잠식해 나아간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누군가 빛나는 눈을 가졌다 해도 순간 거짓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모두 그렇다. 그러기에 인간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객관화가 필요하다. 언제든 어둠에 잠식될 수 있기 때문에.
나부터 그러해보자. 좋은 눈빛을 가지기 위해. 유려한 선의 행동을 가지기 위해. 누군가를 헤아릴 마음의 넓이를 가지기 위해. 축복을 축복에서만 그치지 않고 축복을 더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나 역시 전심으로 진실되기 살아야겠다.
오늘 좋은 동료들과 하루종일 일하고 얘기하다 보니 그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그러기에 나는 또 축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