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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Jul 12. 2024

7월 8일의 탐구일지

정신 사나운 '그'

그는 갑자기 뒷방에서 뛰쳐나와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다. 같은 서랍을 몇 번이고 열고 닫고. 정신사나워 머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이다. 그러곤 어느 곳이 맘에 안 들었는지 청소기와 행주를 집어 들고는 이곳저곳 마구 들쑤신다. 이번엔 나를 들쑤신다기보단 벽의 모서리와 틈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생각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내가 일하는 환경에선 눈을 돌리면 초록색들이 많다. 즉 창문이 많고 창문 바깥으로는 내부와는 다르게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주고 안정되게 느낄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귀에는 청소기 소리. 그리고 휙휙 지나가는 ‘그 인간.’     


나의 ‘그 인간’은 팀장이다. 우리 팀은 4인 혼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를 포함해 4인이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은 ‘그’를 굉장히 불편해한다. 아마 ‘그’도 나머지 3인을 불편해하는 듯하다. 행동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보이지만 분명 불편해한다. 그럼에도 서슴없이 자신의 정의가 공정하다는 듯 마음껏 활보하고 다닌다. 오늘의 타깃은 나다. 내가 생각하는 ‘그’의 행동 중 가장 불편한 것은 언행불일치이다. 예를 들어 청결을 외치면서 자신의 자리는 쑥대밭인 그런 느낌이다. 내가 생각하는 팀장으로서의 자격 중 하나는 언행일치라 생각한다. 팀장으로서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팀장이 아닌 다른 사람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르는 듯하다.     



“청결에 힘써주세요.”

“자신의 자기 계발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이곳저곳 보아주세요.”

“화분에 물 넘치게 주지 마세요.”

“떨어진 휴지가 있으면 주워주세요.”     



마음속에서는 강하게 ‘너나 제발 좀 잘하세요.’를 외친다. 그러나 현실에선 역시 창문밖을 바라보는 것이 최고다. ‘그’의 정의로운 횡포를 무시할 수 있기도 하고 내가 나의 직장을 좋아하는 이유도 창문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오늘은 머리가 너무나도 지끈거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렬한 편두통. 워낙에 편두통이 잦은 나였지만 오늘은 참으로 힘겹다. 아무래도 오늘은 맥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해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필스너우르켈 4캔에 만원과 과자 몇 개를 집어 들고 퇴근했다.     


사실 내가 일하는 곳은 내가 전공했던 분야 되는 전혀 다르게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어떤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좋지 않다. 좋아해서 하는 일 속에서 역시나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그래서 이렇게 스트레스받은 날에는 조금이라도 행복을 챙기려 맥주를 산 것이다. 억지로 하루의 행복 챙기기가 나를 편안하게 해 줄 것이라 굳게 믿기에.     


두려운게

그럼에도 결국 꿈에 ‘그’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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