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한다가 쏜다로 표현이 바뀐 사연,,,
‘턱’ 그러면 사람의 입 아래에 뾰족 나온 부분을 칭한다.
즉 신체의 일부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을 때 남에게 베푸는 음식이나 술’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턱 쏜다’는 우리 사회에서 정겨운 표현이다.
여기서 ‘쏜다’는 '음식 값을 지불한다.값을 치른다’다.
그런데 음식값을 지불한다 하면 되는데 왜 굳이 쏜다로 달리 표현하는 것일 까?
모름지기 아마도 음식 값을 남이 내기 전에 쏜 살 같이 잽싸게 지불, 즉 빠르고 신속함에서 연유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 계산하기 위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이 마치 미국의 서부시대에 카우보이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잽싸게 꺼내는 것에 비유한다면 이는 지나친 비약일 까?
한턱을 쏘는 사람은 그날의 주인공이다.
암묵적으로 얻어먹는 사람들은 그렇게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의 주인공은 연공서열이라는 우리네 문화의 연장선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어떤 면에서 젊은 세대들은 이를 경계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또한 “집에서 남편 대접을 못 받는 사람들의 외부 한턱은 훨씬 빈도수가 높다”라는 심리학자의 분석도 있다.
“집에서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밖에서라도 주인공 지위를 누려보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한턱 외에는 없다”라고 해석을 웃고프게 해 본다.
“당신이 최고야!”라는 아내의 한 마디가 남편의 밖에서의 ‘한턱 쏠게’ 외도(?)를 줄 일 수 있는 명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 사이, 이 “내가 한턱 쏠게”를 영어로 표현하는 게 그닥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This is my treat”, “This is on me” 또는 “This treat is on me” 등으로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다.
전치사 on을 여기서 쓰는 것은 아마도 주체를 자기로 올려놓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표현으로 식당에서 주인장이 한 턱 쏠 때도 영어 표현은 ‘on the house’이다.
주인장이 자신의 레스토랑을 하우스로 비유하면서 “이 집이 책임진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게 아닐까 싶다.
‘한턱 쏘다'는 '표준 국어 대사전',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말로, '비표준어’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어떤 면에서는 참 다정 다감함을 느끼는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주머니에 다소 여유가 있을 때는 한턱 쏜다의 주체가 되어 뿌듯함을, 반대로 주머니가 텅 비어 있을 때는 남이 말하는 한 턱 쏜다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가 있어서다.
한 턱 쏘면서 주인공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한턱 쏘는 행위는 금물이다.
인생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금물인 것이다.
오늘 한 턱 쏘려는 요량이라면 심호흡 한번 깊게 하면서 명분과 당위성이 있는 건지 판단해 보면 좋지 않을까?
만약에 이 부분이 결여된다면 과감히 접자.
경제적인 축면만 이 아니고 정신적인 측면 또한 엄청 중요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