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참사가 주는 교훈
간 밤에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밀집지역에서는 핼러윈 파티를 즐기러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이 골목에서 마치 콩나물시루처럼 뒤엉키면서 집단 압사 사고 가 발생, 120명의 못 다 핀 꽃들이 하늘나라로 먼저 가는 비운을 겪었다. 또 100여 명이 부상당했다. 대한민국 전대미문의 대 참사다.
우선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밤새 긴급 속보 뉴스를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자니, 사전에 대참사 예방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시민들이 한 명이라도 되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에 동참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희망적인 미래의 예고편 인 것 같아 고무적이었다.
좌우 지단 간에, 인재니 재해이니를 논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사건, 사고 발생을 미연에 예방하는 실질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의 부재를 피부로 느낀 것을 공유해 보고 싶다. 물론 한 소시민의 주제넘을 수도 있는 지적절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어마 무시한 인파가 몰려들 것이라는 명약관화한 예상에도 불구, 관계당국의 이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다.
사후 약방문일 수도 있겠지만, 코비드 사태 이후 3년 만에 대면으로 재개되는 핼러윈 파티 행사에 대한 당국의 경각심이 너무나 미흡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경찰 인력 몇 백 명을 배치한 것으로 의무를 다 했다는 것이 경찰 당국의 발뺌인데, 다소 얄밉다.
좁은 골목이 콩나물시루가 된 것은 특정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서였다. 이를 위해 너도 나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인산인해에 대비, 골목길 진입 인원 제한을 실시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비를 미처 못했다면 현장의 흐름을 보고 즉각적이고 탄력적인 조치를 현장에서 행해야 했다.
한 마디로 미흡한 위기대응 능력이다.
tv를 주욱 시청하다 보니, 그야말로 어마 무시한 인파가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골목을 덮쳤다.
즉각 바리케이드를 치고, ‘골목길 진입 인원 제한 조치’에 들어갔어야 한다고 본다.
진입을 안 시키는 게 아니다. 일정 인원 진입시키고, 그리고 시차를 두고 인파가 빠졌다 싶으면 또 일정 인원의 추가 진입을 허용하는 탄력적인 진입 시스템의 운용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위기대응 능력이 아닐까 싶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보여주기 식 , 탁상행정식 공무집행이 아닌, 위민정신에 입각한 현장중심의 공무집행이 너무나 아쉽다.
또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들의 신속한 심야 대책 회의 참석에는 높은 점수를 주어 마땅하다.
하지만 “가용할 인원과 장비를 총동원해서 인명 구조에 만전을 기하라”, “참사 현장에 구조, 의료 인력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진입을 철저히 제한하라” 등의 원론적인 지시 외에는 별 다른 내용이 없음에 씁쓸하다 못해 짜증이 난다.
기왕에 잠도 안 자고 나와 국민을 위해 행하는 재난 대책 회의라면 고귀한 생명 하나라도 더 살려 낼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 지시에 방점을 찍 있어야 한다.
대안 마련이 쉬운 게 아닌 줄은 잘 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자 몫이 아닐까 싶다.
‘무조건의 진입금지 지시’ 대신, 구급차 외에 소방차의 진입제한 조치가 하나의 예가 아닐까 싶다.
일례로 도로까지 점거한 심폐소생술 환자와 의료진으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는 도로에 덩치가 큰 소방차가 걸림돌이 되고 있었던 만큼, 이런 것의 교통정리가 그들의 몫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소방차와 구급차가 신고를 받으면 동시 출동하는 건 매뉴얼에 기초한다. 하지만 화재 현장이 아니고 또 화재의 위험성이 없어 보이는 지옥과 같은 압사 참사 현장에서 소방차는 걸림돌이었다고 여겨진다. 그 공간을 환자 몫으로 돌려주었어야 마땅하다.
핼러윈 파티 간다고 나간 자녀가 있는 집에 대한 배려도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신원 확인 절차나 창구에 대한 얘기도 언급이 없었다.
이태원 운집 인원이 구조에 걸림돌이 된다면서 조기 귀가를 조용하면서도 심야시간 대체 운송수단 마련에도 소홀했다. 새벽 5시에 이태원역 지하철 조기 운행 소식이 전해졌을 뿐이어서 하는 말이다.
책임론을 논하는 개 아니다 위민정신이 최고의 통치 목표라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은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일을 벌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 아니 애원하는 것뿐이다.
다시 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