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식욕, 상상으로 대처하는 것도 한 방법
한국에서 음식평론가이자, 동시에 고메(미식가)를 꼽는다면 많은 이들이 백종원 씨를 연상할 것 같다.
그렇다면 백종원 씨의 스승 격의 인물을 역사 속에서 찾는 다면 과연 누구일까?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홍길동전의 집필자 허균이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책의 제목으로 삼을 정도로 음식에 박식한 이가 허균 이어서다.
도문대작은 또 무엇일까?
도문대작이란 “고기가 먹고 싶을 때면, 도살장 문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려 고기를 씹는 제스처를 통해 고기 먹고 싶은 충동을 달랜다”는 뜻이다. 중국 후한 때 등장한 표현이라고 한다. 이는 음식대전에 기초한다.
음식을 흉내 내고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얼마나 낭만적인 가?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냉수만 마시고도 이쑤시개로 이빨 쑤시는 거드름을 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허균의 도문대작은 약간 괘를
달리한다. 다소 슬픈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귀양 가서 쓴 게 도문대작이다. 평상시 먹었던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음식을 즐기는 법을 도문대작으로 여기면서 먹고픈 욕망을 달랬기 때문이다.
도문대작은 일종의 조리서이자 조선 팔도의 명산 식품을 열거한 식품 서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겠으나 허균은 지금으로 치자면 돈 받고 인사청탁을 들어준 까닭에, 귀양살이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배 기간 중 견딜 수 없는 것이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덕에 맛보았던 조선 팔도의 대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로 유배되어 살게 되니 지난날 먹었던 음식이 생각난다. 그래서 종류별로 나열하여 기록해놓고 가끔 읽어보면서 맛본 것과 같이 여기기로 했다.”
곱씹어 볼 대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먹방 기행의 슬픈 탄생이다.
조선 팔도 각지의 이름난 산물과 음식을 분류, 나열하고 명산지와 특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게 이색적이다.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2월에 이슬을 맞고 처음 돋아난 방풍 싹으로 끓인 방풍죽은 사흘이 지나도 단맛과 향이 가득하다”라고 칭찬했으며, “금강산 표훈사에서 단옷날 맛보았던 석이 병은 다른 떡과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고도했다.
“박산(산자)은 전주, 다식은 안동, 밤다식은 밀양과 상주, 차수(유밀과의 일종)는 여주, 이(飴, 엿)는 개성, 큰 만두는 의주, 두부는 장의문, 들쭉정과는 갑산과 북청의 것이 제일이다”라고 칭하는 식이다.
“배는 천사리(天賜梨, 하늘에서 내려준 배), 금색리(金色梨, 금색을 띤 배), 현리(玄梨, 검은 배), 홍리(紅梨, 붉은 배), 대숙리(大熟梨, 잘 익은 배) 등이 있고, 귤류는 제주에서 나는 금귤(金橘), 감귤(甘橘), 청귤(靑橘), 유감(柚柑), 감자(柑子), 유자(柚子) 등이, 감 종류로 조홍시(早紅柹, 일찍 딴 감), 각시(角柹), 수분이 적어 곶감으로 이용한다는 오시(烏柹, 먹감)가 있다”고도했다.
더 더우기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도 몬도가네(?) 식의 보양식을 즐겼다는 점이다.
“강원도 회양의 곰 발바닥과 사슴 혀, 양양의 표범 태, 전라도 부안의 사슴 꼬리, 평안도 양덕과 맹산의 꿩, 평안도 의주의 거위 등이 유명한 보양식이다”라고 까지 언급해서다.
수산물 소개도 전문가 뺨치고도 남는다.
“한성과 경기도는 숭어, 웅어, 뱅어, 복어, 곤쟁이, 쏘가리, 맛조개가, 강원도는 붕어, 열목어, 은어, 송어, 고래 고기가, 충청도는 뱅어, 조기가 유명하다”라고 했다.
“경상도는 청어, 전복, 은어가, 전라도는 오징어, 큰 전복, 곤쟁이 새우가 맛이 좋다”라고 소개했다.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등 북부 지역은 청어, 청각, 소라, 게, 굴, 송어, 청어, 언숭어, 새우 알젓 등이 유명하다”고도 설명했다.
“채소류는 한성과 경기도의 토란, 여뀌, 파, 부추, 달래, 고수 등이 질이 좋다”라고 하였고, “전라도의 순채, 생강, 무가 좋고, 경상도는 토란, 강원도는 표고, 평안도는 황화채(원추리꽃)가 유명하다”라고 했다.
“고사리, 아욱, 콩잎, 부추, 미나리, 배추, 가지, 오이, 박 등의 채소류는 전국에서 나는 것이 다 좋다”라고 했으니 당시의 채소나 지금의 채소나 별반 다른데 없어 보인다.
먹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이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트라우마에 빠지는 이가 있을 정도의 세상이다. 그래도 절제가 가끔은 필요하다.
먹고 싶은 것 무조건 다 먹다가는 건강상 큰 일 난다.
허균의 도문대작을 스승 삼아 상상 속의 ‘먹방 나래’를 펴보는 것도 가히 나빠 보이지 않는다.
도문대작을 ‘먹방의 과유불급’으로 삼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