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s “!”

카톡의 생명은 함축이다, 아니다?

by DKNY JD

문자나 카톡의 상징성은 함축성이다. 이모티콘이나 간결하게 단어 몇 개 나열하는 형태를 대다수 네티즌들은 택한다. 따라서 길게 쓰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필자의 카톡, 문자는 서사시에 가까울 만큼 장문이다. 한마디로 젊은이들이 보면 “헐, 꼰대네!” 하면서 읽기를 거부할 것 같기도 하다.


카톡의 장점은 함축인데, “닌 뭐 하는 짓거리 지?” 하면서 스스로를 책망한 적도 꽤 된다.


단축형에 관한 한 한 때는 스스로를 그 누구보다 프로라고 자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정작 카톡 직성 할 때만큼은 유난히 작아진다. 장문을 꼭 구사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간결을 벗어나 장문을 택하는 이유가 뭘까?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함축된 글에다가 시니컬한 표현이 조금이라도 포함된다면 상대편이 감정 상하기가 일쑤여서 인 것 같다.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오해가 생기는 경험을 몇 차례 해서 인지, 이의 방지책으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카톡이나 문자에는 억양이나 인토네이션이 없다 보니, 말로 할 때에 비해서 감정표현이 결핍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전달하려는 원래의 취지는 퇴색한 채, “ 나를 무시해”, “내가 이것밖에 안돼” 등의 감정유발이 수반된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주알, 고주알 사족을 달기 시작한 게

스스로의 장문 톡 탄생 배경이다.


여기에는 성격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남을 위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일종의 이타심의 발로 라고나 할까?


이를 이타심의 한 갈래로 감히 자의적인 해석을 한번 해본다.


버릇이 정말 나쁘게 든 것 같다. 약어, 함축어, 이모티콘, 유행어를 통해 소통의 방법을 혁신하고 소통시간을 단축한다는 게 카톡이나 문자의 기본 취지인데...


이를 역행해도 크게 역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보다 강도 높게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수정이 또는 개선이 안 되는 이유는 뭘 까?


이내 “horse is latte”(“라테( 나 때) 때는 말이야…”) 임을 깨닫는다. 스타일을 못 바꾸니, 꼰대가 아니면 무엇일까?


간결하게 보내면 오해가 생기고, 이모티콘을 보내는 건 나이에 관계없이 무성의 한 태도로 여겨지고…,


참 이유도 많다. 장문의 카톡을 보냈는데 찍 하니 이모티콘 한 개만 달랑 날아들어 올 때의 그 찜찜한 기분…


그 기분만큼은 상대방에게 전해주지 말자가 스스로의 신조이다 보니 이로 인해 카톡 속에서 이모티콘이 퇴출된 지는 아주 오래전이다.


‘꼰대 탈출’을 선언해 본다.


자연스레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가 떠오른다.


발신인이 “?” 달랑 적힌 편지를 보냈고, 답신인 역시, “!” 하나로만 답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다. 아마도 기네스북 등재감 일 것 같다.


중세에 한 프랑스작가( 빅토르 위고라는 설이 유력)가 자신의 신간이 잘 팔리는지 궁금한 나머지, 서점주인에게 보낸 편지가 “?”였고, 너무나 잘 팔린다고 무릎을 탁 치면서 서점주인이 작가에게 답한 게 ”! “ 인 것이다.


“?” 과 “!” 만으로도 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니 놀랍지 않은 가?


소통의 일대 혁신을 도모한 문자와 카톡 등의 SNS!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 대화 가운데에서의 오해의 소지도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 일까?


좀 더 고민을 해 볼 일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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